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냄비를 닦으며

라포엠(bluenamok) 2023. 4. 23. 01:24

 

 

 

 

냄비를 닦으며

 

 

임현숙

 

 

 

 

냄비의 찌꺼기를 닦는다

손등이 도드라지도록 문지르니

반들반들 은빛 화색이 돈다

 

내 생각의 부스러기도

냄비처럼 닦고 싶다

 

책을 펴들어

현인의 지혜로 쓸어내고

복음으로 베어 보지만

칼칼한 게 개운하지 않다

 

가을이 무르익은 시집을 연다

'묵은 벽지가 바람처럼 들판을 간다'

한 절의 시구가

까칠한 화장기를 벗겨 낸다

향이 깊은 시는 마음을 닦는 비누이다

 

나도

누군가

누군가의 마음을

닦아 주는 시가 되고 싶다.

 

 

-림(20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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