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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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파리 지다

마지막 이파리 지다  임 현 숙   창밖 미루나무 마지막 이파리 뚝 지던 날 비가 내렸다 나무는 이별이 서러워 주룩주룩 울었다 붉디붉게 익고 나면 이글거리던 불꽃 사그라지듯 지고 만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떨어진 자리 상처 아물고 새봄이 온들 다시는 움트지 않을 사랑이 지나간 자리빗방울이 모질게 파고들었다 오직 한 잎 바람 되던 날 나무는 오래도록 비에 젖었다.  -림(20141020)  https://www.youtube.com/watch?v=1PHKwTQETO8

내 가을의 주인

내 가을의 주인 임현숙                                           마른 잎의 춤사위가사그라지는 불씨를 풀무질하는늦가을 가을 올가미에 걸려바둥거릴수록울대가 부어오르는데 왜단풍은 서럽게 붉은 건지마음 골에 맺히던 핏빛 꽃망울 무엇일까이 향기로운 몸부림은 낙엽 무덤 위에툭툭떨어지는 꽃숭어리 화석이 된 그리움내 가을의 주인이었네. -림(20241104) https://youtu.be/Xy9OeUlzr94

사랑에 살다 보면

사랑에 살다 보면 임 현 숙  사랑 부싯돌에 녹아내린 몽당양초시간이 흐르며심지도 타들어 갈 거란 걸모르지 않았다 어려선 엄마만 졸졸거리는 병아리였고친구가 좋아지며꿈을 심어 준 엄마는 등 뒤로 밀려났다당신이라는 은하에 둥지를 틀고 아기별들과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보니지천명이 훌쩍 지나고풋풋하던 꿈이 소멸하고 있었다 멈칫생의 가을길에서오래전 촛농이 되어버린 꿈의 기억살아나며 울먹이는데어린 손녀 날 부르며 달려온다 사랑 · · ·알면서도텀벙거리는마그마 늪이었다. -림(20241020)   https://www.youtube.com/watch?v=lPl7kPJoZes

함지박이 좋다

함지박이 좋다  임현숙   투박한 함지박은 좁쌀만 한 것 모난 것너부데데한 것 길쭉한 것불평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오이는 여드름이 많아 싫고 호박은 쉬 물러터져 안되고 이래서 저래서 툴툴 골라내고 투정해 봤자 길어야 백 년 남짓한 세상살이  벗이여함지박처럼너그러이오늘을 보듬고 살자.  -림(20130716)  https://www.youtube.com/watch?v=aVWB-PpIFio

가을 나무

가을 나무  임 현 숙   머얼리노을이 손짓하는 언덕에빈손으로 선 나는가을 나무입니다갈 볕이 붉은 물 들인 자리샘 많은 바람이 쓸어내면데구루루내 이름표 붙은 이파리들이저 시공으로 사라집니다하나둘이 세상 소유문서에서내 이름이 지워집니다노을빛이 익어갈수록움켜쥐었던 두 주먹손바닥을 보이며삶의 굴레에서 해방됩니다.   -림(20151105)   https://www.youtube.com/watch?v=-P3Kd5KuM98

가을 기도

가을 기도 임 현 숙   수수하던 이파리저마다진한 화장을 하는 이 계절에나도 한 잎 단풍이 되고 싶다앙가슴 묵은 체증삐뚤거리던 발자국세 치 혀의 오만한 수다질기고 구린 것들을붉게 타는 단풍 숲에 태우고 싶다찬란한 옷을 훌훌 벗고겸손해진 겨울 숲처럼고요히고요히입은 재갈을 물고토하는 목소리에 귀담아오롯이 겸허해지고 싶다나를 온전히 내려놓아부름에 선뜻 대답할 수 있기를겨울이 묵묵히 봄을 준비해봄이 싱그럽게 재잘거리는 것처럼나도 무언가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림(20211022)  https://www.youtube.com/watch?v=LRBbbSngvPU

시월의 밤

시월의 밤 임 현 숙  푸르던 이파리피에로가 되는 시월의 밤붉은 조각달이 내려다본다 별빛보다 은근히앞서가며 동행하더니 가을이라는 독주에 달빛이 취했다하늘이 붉다 가로수 화르렁 거리는시월의 깊은 밤불면의 창을 기웃대는저 농익은 달빛 쭈그러지던 하루가어깻죽지를 편다살아야겠다.  -림(20241007) https://www.youtube.com/watch?v=47ZWjlDae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