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꿈/ 문정희

라포엠(bluenamok) 2016. 10. 12. 00:07



        꿈/ 문정희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 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가제를 먹고 그 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검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떠나리. 아! 피사, 아시시, 니스, 깔레 ......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꾼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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