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기억의 자리 - 나희덕

라포엠(bluenamok) 2015. 11. 21. 13:22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억의 자리 - 나희덕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 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 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Right here Waiting for You / Richard Marx>

 

 

'시인의 향기 > 바다 한 접시(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길 / 문정희   (0) 2015.12.07
그날 아침(외 1편)-나희덕  (0) 2015.12.05
머플러  (0) 2015.11.20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정희   (0) 2015.01.26
마지막 산책  (0)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