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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창작의 비법은 없다 - 문학체험을 많이 해라/박재삼

라포엠(bluenamok) 2012. 10. 1. 00:13

(1) 시 창작의 비법은 없다 - 문학체험을 많이 해라 - 박재삼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것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언뜻 들으면 모순된 말 같지만 결코 모순된 표현이 아니다.
방황한다는 의미는 쓸데없이 헤매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찾아서 모색하는 것이며,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시 창작의 길을 걸어와 그쪽 분야에선

제법 달인의 경지에 섰을 법한 시인들도 한결같이 "시는 쓰면 쓸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지나친 겸손 같기도 하고 엄살을 떠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말은 괴테의
그것과 같은 의미로서 시 쓰기 역시 죽을 때까지

부단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급하게 시 창작의 비법을 묻은 것은 어리석은 짓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법은 없다 하더라도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데생연습을 쉴새없이 하는 것처럼 시를 쓰기 위한 기초 닦기나 준비운동쯤은 있을 것이다.

시 창작을 하려는 지망생들은 창작의 비법을 알아서 지름길로 가려는 생각을 버리고
소와 같은 우직한 걸음으로 자기의 모든 생활습관에서부터
시창작을 위한 기초를 닦아 가야 할 것이다.




1. 문학체험을 많이 해라




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구양수가 말한 삼다(三多)가 필요하다.
그 중의 첫째가 다독인데 풍부한 독서가 시 창작에서도 예외가 될 리 없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기초로서 독서체험을 풍부하게
가져야 하는 것은 시 창작의 필수조건이다.
독서체험은 실제의 체험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글쓴이의 체험, 사고, 감정, 인격, 사상 등의 총체적인 것과의 만남 이 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우리들이 부딪치는 세계의 폭은 좁고 한정되어 있다.
당연히 경험도 거기에 비례해서 비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우물 안의 개구리 식의 자기 생각이나 세계를 뛰어넘어서
더 넓은 세계로 우리의 사고와 정신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그러므로 독서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살찌우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또는 사물을 보는 방법이나 시각을 다양하게 만들고 사고를 깊게 한다.
동시에 자기의 직접적인 체험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흔히 독서를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히 문학경험은 시 창작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소설이나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았을 때 자신도 그와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러한 충동이 창작의 씨앗을 만들기도 한다.
또 작품을 읽는 동안 자기의 내면 속에 감추어져 있거나 잊혀졌던
무수한 생각과 감정들이 이끌려 나와서 해후하게 되고 거기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나도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그만 손을 떼고 다른 사람의 시나 소설, 수필 등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막혔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글을 모방해서가 아니라 글을 읽는 동안 잠재해 있던
그 무엇들은 글을 낳고, 좋은 시가 좋은 시를 낳는다는 말처럼 문학경험은 창작의 훌륭한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무수한 작품을 점해 봄으로써 훌륭한 작품을 볼 주 아는 안목을 기르고 지금 쓰고 있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객관적인 잣대를 갖다댈 능력도 키우게 된다.

19세기 영국의 비평가 헤즐리트는 "시는 오직 상상의 언어"라고 했다.
이 말은 상상력 없이는 쓸 수 없는 것이 시라는 의미이며 실제적으로도 시는 어떠한
글보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시를 쓰는 지망생들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키워야 하는데, 문학체험이야말로
이것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수많은 상상들이 집약되어 나타난 것들이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무수히 문학작품을 접해 봄으로써 자신의 상상력을 키울 수가 있다.

특히 시야말로 상상의 산물이므로 부지런히 시를 읽어야한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그 나무의 재질을 알아야 하고, 돌을 다루는 석공은
그 돌의 성질을 잘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시를 쓰려는 사람은 우리말에 능통해야 한다.
시는 극도의 예술이며, 언어의 정수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어떠한 문학보다도
언어에 대한 감각과 언어를 다루는 솜씨를 필요로 한다.
처음부터 이것을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후천적인 자기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문학체험은 이 언어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언어의 대한
속성이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수많은 작품을 읽는 과정 속에서 우리말이 지닌 섬세하고 미묘한 부분까지 몸으로 느껴봐야 한다.
그리고 숱한 어휘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그것들이
어느 자리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가를 스스로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창작은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창작은 무엇보다도 새로움을 찾아서 나아가는 것이지만 선배들이 쌓아올렸던
기존의 작품들을 밟아 본 후에 자신의 새로운 발자국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늘 한결같으면서도 늘 새롭고 늘 새로우면서도 한결같다는
뜻으로, 즉 "옛것을 모범 삼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따라서 풍부한 문학체험은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통과제의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