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시누이 부부
임 현 숙
봄비 오는 거리엔 상큼한 봄동 겉절이 냄새가 배어있고 외양간 냄새 훅 바람결에 스친다.
"정은 엄마 왔시유" 큰 시누이 남편은 나를 그렇게 반겼지. 늦둥이 신랑의 매형인 그는 시아버지뻘이었고 외국영화 배우를 닮은 잘 생긴 얼굴에 깊은 밭고랑이 패여 웃을 땐 하회탈 같았어. 사 남매 다 출가시키고 손주 재롱 보시며 편히 사실만도 한데 시골집을 지키며 티격태격 사시는 노부부의 일상이 정겨워 보였지. 혼자 밥 챙겨 먹기 싫어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게 시누이의 불만이었고 마실 가면 퍼뜩 안 온다고 시누 남편은 투덜거렸어. 이것 저것 내게 물으시고 말을 건네신 건 맏딸보다 몇 살 위인 처남댁이 격 없기도 했겠지만 외로움에 반기셨을 거야. 지병이 있었으나 관리를 잘해 그렇게 빨리 이승을 떠나실 줄은 몰랐어. 재작년 여름 장마에 물 새는 지붕을 손보신다고 올라가시다 토방으로 떨어져 뇌출혈로 바로 세상을 뜨셨어. 집 떠날 줄 모르던 고양이 부부가 홀로되어 아직도 그 집을 지켜. 비닐하우스에 빨갛게 익어가던 고추, 텃밭에 파, 깻잎, 배추, 그 넓은 전답. 허리 굽은 시누이 혼자 어찌 돌보실지. 어쩌다 내려가면 고춧가루랑 참기름이랑 보따리 챙겨 주시던 시누이 부부. 빈 외양간과 낡아 빈집 같은 다섯 칸 옛집을 떠나지 못하는 시누이의 음성이 봄비 속에 촉촉이 들려온다.
"정은 어메. 어머니 모시느라 고생 많지?"
-림(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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