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한
임현숙
도망간 잠을 쫓아가다 지치면
젊은 날 휘두른 칼날의 회한이 삼류 무대의 막을 올린다
'베르디의 나부코'가 흘러나오는 찻집
한 여자가 속눈썹이 긴 남자를 돌아서고 있다
그녀의 부족함이 그의 가난을 받아줄 수 없는 건 아니라는데
해사한 미소에 얹힌 코털 때문이었을까
커피가 식기도 전에 일어서는 모질은 여자
다음날 갱지에 써 보낸 몇 줄의 무덤덤한 문장으로
순정을 베고 만다
그을음을 남기고 꺼져버린 촛불
지워도 지워내도 스미인 칼 빛
오래도록 행복을 빌었던
당돌한 청춘의 흔적
머리에 억새꽃 한창인 이제
그만 잊어도 되지 않겠니
물안개 속에서 먼동이 불새처럼 날아오른다
정갈한 햇살에 머리를 감아야겠다.
-림(20250115)
https://www.youtube.com/watch?v=92hmjW1-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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