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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슬픈 홍시

라포엠(bluenamok) 2012. 12. 2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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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홍시
              
                                                               임 현 숙




서리가 내리기 전 떫은 감을 따서 항아리에 재우면 조청처럼 달곰한 홍시가 시어머니 입맛을 다시게 했다. 긴 겨울밤, 오물오물 홍시를 드시며 옛날 얘기하듯 들려주시던 이야기는 슬픈 모정의 역사이다. 한국동란 발발 무렵, 시아버지가 마을 청년당원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남편 시신을 찾아 헤매다 젖먹이 아들 굶을 걱정에 눈물 머금고 가던 길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다. 결국, 빈 무덤에 성묘 하고 세상을 뜨자 남편 이름 석 자와 나란히 누우셨다. 청상(靑孀)의 시어머니가 아들을 붙들어 밤마다 독수공방 눈물 마를 날 없었다는데 하늘의 별을 따듯 12년 터울로 이대 독자 아들을 낳았으니 입덧할 때 큰 병이 들은 줄 알았다 한다. "내 가슴엔 불이 들었어." 한숨 섞인 독백의 말을 어찌 못 알아듣겠는가. 긴긴 겨울밤 외로움을 달래곤 했던 바알간 홍시엔 여인의 한과 모정의 세월이 끈적하게 녹아있다.



-림(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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