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마음
안개비 임현숙
부모는 자식이 손가락을 다치면
마음에서 피가 흐른다는 것을 절감한다.
둘째와 9년 터울로 막내아들을 낳았다.
삼대독자로 태어난 아들은 태어날 당시 우량아였는데
자라면서 아빠를 닮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건강 체질이다.
지금 대학 4학년인데 멀리서 혼자 공부하다 보니
제대로 해먹지도 못할뿐더러 생활비를 여유 있게 보내지 못해
아침엔 토스트, 점심엔 학교에서 가장 저렴한 걸 먹는다 한다.
건축 설계학을 전공하니 학교에서 밤샘 작업을 할 때도 잦고
저녁 늦게 집에 와서 파스타나 밥을 해 먹곤 한단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3주간 방학이라 집에 와있다.
워낙 마른 체형이라 짐작은 했지만, 공항에서 처음 보는 순간
수척해진 얼굴이 왜 그렇게 불쌍해 보였는지...
집에 도착해 삼겹살을 구워 밥을 차려주니 밥을 수북이 세 공기나 먹는다.
집을 떠나 있기 전엔 한 공기 먹으면 수저를 놓던 아이가
그렇게 많이 먹는 것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성탄절 아침, 늦은 아침밥을 먹으며
큰딸이 막내의 수북한 밥그릇을 보고 놀라 묻는다.
"늘 그렇게 많이 먹니?"
"항상 배고파."
풍요롭게 살던 예전 같으면 웃고 넘어갈 말이
가슴에 대못처럼 깊이 박힌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밴쿠버에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서울 모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며 걱정 없이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나 또한 학교 어머니회와 육성회 쪽에 치맛바람을 날리기도 했다.
재벌은 아니어도 먹고 살만하니 삼대독자 외아들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이 남부럽지 않게 자랐는데
한창 먹을 나이에 터무니없는 생활비를 쪼개 쓰느라
늘 배고프다는 그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밥숟가락을 든 채 한참을 눈물 흘렸다.
오늘 날, 백화점 식품부에 가보면 온갖 먹을 거리가 현란히 진열되어 있고
재래 시장 보다 몇 배 비싼 가격에도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때거리가 없어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있다.
때때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를 보아도
솔직히 크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내 아들이 충분히 먹지 못해 배고프다는 말은
밥 먹던 손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랬구나.
네가 배고플 때 나는 찬 없는 밥이라도 배불리 먹었는데
배고팠구나...
사업 실패 후 오로지 자식을 위해 가시고기의 삶을 걷고 있는
남편이 이 말을 듣는다면 자책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남편 또한 시린 겨울을 허리끈 졸라매고 지낼터인데
이젠 개다리 소반같은 밥상 마저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할 것 같다.
'항상 배 고파.'
아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메아리 친다.
2012년 성탄절에.. 림
'나목의 글밭 > 혼잣말·그리운 날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0) | 2012.12.30 |
---|---|
슬픈 홍시(紅柹) (0) | 2012.12.29 |
함박눈을 바라보며 (0) | 2012.12.19 |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 (0) | 2012.11.30 |
이런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0) | 2012.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