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혼잣말·그리운 날에게

함박눈을 바라보며

라포엠(bluenamok) 2012. 12. 19. 12:48

 

    

 

 

 

함박눈을 바라보며

                  안개비 임현숙

 

 

 

함박눈 송이송이

나목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아리아리 설렘이 눈을 뜨고요

겨울이 맘 속에 똬리 틀어요

 

포근한 이 눈발은 누가 보내왔을까

 

장독 위에 소복한 하얀 눈을 떠먹고

털 달린 고무신에 실로 뜬 벙어리장갑

털 스웨터가 흠뻑 젖어도

추운 줄 모르던 어린 시절

동그라미 네모 세모 내 친구

 

동심의 꿈이 부서져 내려요.

 

 

 

 블라인드 사이로 언뜻 보이는 창 밖이 환해서 안개가 짙은 줄 알았다.

차고에서 나오는 순간 소리 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니 아침부터 설레 하얀 길을 끝없이 달리고 싶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은 다 다를 것이다.

열애 중인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멋진 데이트를 구상하거나 전화를 할 것이다.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에겐 지난 추억으로 뭉클해질지도,

가난한 이는 이는 혹한의 시간이 엄습해 옴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추운 줄 모르고 친구들과 어울려 눈밭에서 뒹굴던 어린 시절 속으로 돌아간다.

 

 패를 갈라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느라 볼이 발갛게 부어오르고 손발이 동상에 걸려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처럼 약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얼음 박인 손과 발을 담뱃잎 삶은 물에 담가 얼음을 빼던 기억이 난다.

한 두 시간 물을 끓여 부으며 담그고 나면 살갗이 쭈글쭈글해지고 가려움증도 좀 사그라진다.

며칠 간 그렇게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멀쩡해졌다. 담뱃잎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으면 혈액순환이 잘되어 치료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시절엔 대문 밖이 놀이터였고 자연이 놀이 기구였다.

돌멩이로 사방 치기를 하고 땅따먹기, 자치기, 담방구, 목마 타기... 등 놀잇거리에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도회지에서 자라서 쇠꼬챙이 찍어가며 얼음판을 지치던 썰매를 타본 기억이 없다.

남편은 시골에서 자랐는데 이대 독자이고 생후 두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홀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친구들이 아버지나 형이 만들어 준 썰매를 씽씽 지칠 때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조금 나이가 들은 후 스스로 부엌 칼을 판에 박아 외날 썰매를 만들어 논에서 지쳤는데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며 놀이 문화도 문명의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요즘 세대는 우리가 즐기던 놀이보다 진보된 놀이를 하느라 경비도 많이 들고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스케이트는 물론 눈썰매, 나아가서는 스키, 스노보드 등 몸으로 부딪히는 놀이보다는

기구를 사용해 운동의 개념으로 하는 겨울철 놀이 문화가 정착되었다.

미래 언젠가는 하늘을 나는 산타클로스 썰매가 눈 내리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문명이 나날이 발달하고 있으므로 동화 속 꿈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그때는 눈싸움, 눈사람 만드는 겨울 놀이는 전래 동화처럼 먼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처럼 추억하는 이들도 이미 먼 기억 속에 자리하겠기에.

 

 

 

12.12.18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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