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실한 종
임현숙
발톱을 깎다가 가뭄 든 밭을 보았다
손바닥보다 더 주름진 발바닥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어둡고 시리고 끈적한 날들을
무병하게 지나오며
발효된 서사(敍事)가 밭고랑에 꿈틀거린다
딱딱한 바닥과 말랑말랑한 뒤꿈치의
아슬아슬한 첫 입맞춤부터
달과 해의 무게를 버텨내며 다져진 군살이
이따금 티눈으로 샐쭉할 때면 발이 투덜거리곤 했다
잘 나가는 신작로만 맞댄 건 아니었으나
시궁창에 얼굴 비비지 않은 걸 고마워할까
담배 연기 같은 허무를 탐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길까
구수한 맛 미끄럼 치는 주방 바닥
흙냄새 정다운 오솔길과의 만남이
소소한 행복이었음을 기억할까
지금도 까슬한 바닥 위에 맨살로 납작 엎드려
명령을 기다리는 내 신실한 종
내일은 태양과의 맞선을 주선해야겠다.
-림(20250113)
https://www.youtube.com/watch?v=EvGYvst6q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