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시선(詩選)·시시껍절할지라도

가로등

라포엠(bluenamok) 2015. 4. 23. 14:00

 

      가로등 임 현 숙 모두가 퇴근하는 시각 집을 나선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침침한 눈으로 주위를 밝히며 습관처럼 발자국 소리를 매만진다 아직도 취직 못 한 일류대 졸업생의 처진 어깨 긴 그림자로 끌어안고 곤드레만드레 아저씨 발목 걱정스레 쏘아보며 고물 줍는 할머니 굽은 등이 어둠보다 더 무거워 빈 수레 바퀴를 굴리는 눈길 딸아이가 돌아올 무렵이면 두눈 부릅뜨고 더욱 열심히 안경알을 닦는다 허름한 하루 하루 말없이 다독이다 보면 이따금 슬퍼져 눈을 껌뻑인다 그들이 곤히 잠든 후에도 골목을 지키는 아버지의 자상한 눈빛이다.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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