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2024/02 9

새날의 일기

새날의 일기 임현숙  어제는등 뒤로 저문 것들이 더부룩해되새김질하곤 했기에오늘 만나는 새날 앞에맑은국 한 사발 정화수처럼 내어놓습니다 제야의 종소리 한울림마다 빌고 빌었지만이루어질 수 없는 숱한 바람들은그 문장조차 희미해지고빈손엔 미련만이 돌아앉아 있습니다 생의 여름은 저물어이별에 익숙해져야 할가을 빈 벌판에서허옇게 서리 내린 머리 조아리며작은 바람 뭉치 하나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새날에는뒤돌아보지 않게 하소서마음의 텃밭에 미운 가라지가 싹 트지 않게 하소서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소서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그것으로 족하다 미소 짓게 하소서 낡은 나무 계단처럼 삐그덕거리는 사연을제야의 종소리에 둥 두웅 실어 보내며첫사랑 같은 새날을맨발로 마중합니다.  -림(2024 새해를 맞으며)..

가을날

시:가을날/임현숙 producing, singer: producer Gumin Choi(GU) https://youtu.be/hwpgtn0il-g?si=MFEim3RGUVhMEcVV 가을날 임현숙 하늘빛 깊어져 가로수 이파리 물들어가면 심연에 묻힌 것들이 명치끝에서 치오른다 단풍빛 눈빛이며 뒤돌아 선 가랑잎 사람 말씨 곱던 그녀랑 두레박으로 퍼올리고 싶다 다시 만난다면 봄날처럼 웃을 수 있을까 가을은 촉수를 흔들며 사냥감을 찾고 나무 빛깔에 스며들며 덜컥 가을의 포로가 되고 만다 냄비에선 김치찌개가 보글거리고 달님도 창문 안을 기웃거리는데. A Fall day Written by Hyeon Sook Lim When the sky color deepens, the leaves of the street tr..

그레이로 가는 중입니다

그레이로 가는 중입니다 임현숙 "엄마~ 염색 좀 해. 완전 할머니야!" 나 할머니 맞는데! 여섯 살백이 손녀 있잖아? "염색하시면 훨씬 젊어 보이실 텐데요." 지인의 말, 지당한 말입니다. 친정어머니를 닮아서인지 흰머리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어요. 한 달에 한 번 뿌리 염색하다가 이젠 이십 일이면 색칠해야 합니다. 눈 감았다 뜨면 한 달이 훅 지나가 버리는데 번거롭기도 하고 눈도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물들이기를 놓아버렸습니다. 어제는 손녀딸을 데리러 갔다가 선생님을 마주쳤어요. 서양 선생님이 저를 보더니 'Your hair is a nice color~'라고 하더군요. 오˙˙˙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용기를 얻었어요. 할머니면 어때요. 나이와 다정히 좀 더 멋있어질 그레이로 가는 중입니다...

어둠의 스토킹

어둠의 스토킹 임현숙 불면의 밤 위로 짙은 어둠이 내린다 잠들지 못한 채 어둠을 응시하는 오감 어둠은 새까만 망토를 두르고 큰 입으로 잠들지 못하는 한 영혼을 데려가려 한다 피하면 피할수록 집요하게 따라오는 검은 입술 물러가기를 애원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어둠의 스토킹 불을 켜자 창문 밖으로 몸을 숨기는 어둠을 가자미 눈초리로 노려보다 불 끄고 눈감기를 열 번을 더해보아도 더 놀자 더 놀자 지치지 않는 뇌세포들 어둠의 칙칙한 입맞춤을 거부하지 못해 알약 하나를 삼키고 눈을 감으면 깊이 모를 어둠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숨소리는 쇳소리를 내고 발끝까지 어둠 보에 싸여 시체가 되어간다 컹컹 옆집 개 짖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기상 알람 소리 아침이 오는데 ··· -림(20240202)

새로운 시작/브런치스토리(brunchstory)를 시작하며

나목의 브런치스토리 (brunch.co.kr) 나목의 브런치스토리 밴쿠버지부 시인 | 나목 임현숙 시인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brunch.co.kr 새로운 시작/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며 하루가 자전거처럼 달려간다. 일주일이 자동차처럼 달려간다. 한 달, 일 년이 비행기처럼 날아가 버린다. 내게 남은 시간이 점점 짧아져 간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 지금도 달려오는 추억 시와의 사랑에 목마른 나는 새로운 세상에 첫발걸음을 내디딘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징검돌이 되고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나목

추억의 불씨

추억의 불씨 임현숙 하늘이 무너질 듯 겨울비 쏟아져 인적 드문 거리에 물빛 출렁이고 빗방울 소야곡에 시들은 마음 기대면 저문 기억들이 유령처럼 다가온다 창백한 낮달 같은 첫사랑 풋사랑 시작도 없이 엇갈린 이별 말없이 바라보던 그 눈빛을 그때는 어수룩해 읽지 못했노라고 빗살 머리채로 지워질 편지를 쓰고 또 쓴다 그 눈빛 닮은 노을꽃 피는 어느 쓸쓸한 저녁 따스한 불빛으로 켜지기를 겨울비는 늙지도 않는 추억의 불씨를 화르르르 지피고 돌꽃이 된 닿을 수 없는 인연의 고리 굵은 빗살에 걸어본다. -림(202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