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 창작의 비법은 없다 - 관찰하는 눈을 가져라 - 박재삼
4. 관찰하는 눈을 가져라
조지훈 시인은 글을 잘 쓰려면 눈은 과학자를 닮으라고 했다.
이 말은 사물을 관찰하는데 치밀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는 평범하고 예사롭기만 한 사물이나 현상도 예리한 관찰을 통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이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에 새로움과 기쁨이란 우리들의 삶의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
그것을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실상 우리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고 낮이 익어서 별반 새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을 봐도 무덤덤하고 저것을 봐도 시큰둥하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타성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고정적인 생각일 뿐
세상의 모든 사물은 어느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본 꽃의 모양과 빛깔이 다르고 점심때와 저녁때도 각각 다르다.
또 빛의 각도, 세기, 밝기, 등에 따라서 꽃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똑같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들의 섬세한 변화를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적어도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물 하나를,
그리고 자기 주변의 현상들을 주의 깊게 볼 줄 아는 섬세한 눈을 갖고 있어야한다.
여느 사람들 모양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무덤덤하고 무신경해서는
절대 좋은 시를 창작할 수가 없다.
정확하고 예리한 관찰을 통하여 자기의 눈으로 본 사물들의
의미를 붙잡을 수 있어야만 시가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가가 플로베르다.
그는 한 개의 모래알도 똑같지 않을 정도로 묘사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그만큼 사물을 정확하게 관찰하라는 이야기다.
이런 플로베르를 스승으로 모시고 글쓰기를 배운 사람이 바로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자 모파상이다.
그는 자신의 표현력이 시원치 못함을 느끼고 플로베르에게 표현의 비법을 물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날마다 자네 집 앞을 지나가는 마차를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하게나.
글쓰기의 가장 좋은 연습이라네."
모파상은 스승의 말에 따라 한 이틀 동안을 관찰해 보았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단조롭고 따분해서 실상 관찰할 필요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찾아온 모파상에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관찰이야말로 훌륭한 글쓰기의 연습인데 어째서 쓸모 없다고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게나. 개인 날에는 마차가 어떻게 가며 비 오는 날에는 어떤 모습인가.
또 오르막길을 오를 때 는 어떠한가? 말몰이꾼의 표정도 비가 올 때,
바람이 불 때 또한 뙤약볕 아래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면
결코 단조로운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될 거네."
그 후 플로베르는 모파상이 원고를 가지고 올 때마다
더욱더 관찰하는 눈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모파상은 끊임없는 글쓰기를 연습함으로서 후에 명작을 남길 수가 있었다.
중국의 저명한 서예가 왕희지 또한 그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필체가
그의 관찰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는 거위를 무척 좋아하여 그것들을 기르며 관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특히 연못에서 헤엄칠 때 물을 힘차게 가르는 거위의 발 동작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여기에서 새로운 운필법을 창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관찰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개성과 독창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새로움 들을 창조해 내는 것을
생명으로 하는 시 창작에서는 아무리 이것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 기계적인 관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관찰은 사물에 대한 우리들의 관습적인
시각의 연장일 뿐이며 피상적인 모습만을 보게 만든다.
따라서 사물을 정확하게 보아내기는 고사하고 그것이 지닌 새로운
의미도 결코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제대로 관찰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상투적인 인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애정과 관심을 갖고 그것의 아름다운을 찾아내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까지 열어 보이는 행위이다. 이때 사물을 경이로움과
눈부심으로 자신들의 모습과 의미를 우리 앞에 드러내 놓게 된다.
땅에 떨어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물방울
사진으로 잡으면 얼마나 황홀한가?
(마음으로 잡으면!)
순간 튀어 올라
왕관을 만들기도 하고
꽃밭에 물안개로 흩어져
꽃 호흡기의 목마름이 되기도 한다.
땅에 닿는 순간
내려온 것은 황홀하다.
익은 사과는 낙하하여
무아경으로 한 번 튀었다가
천천히 굴러 편하게 눕는다.
-황동규, <풍장 17>
위의 시는 시인의 눈과 마음이 하찮은 "물방울"에 다가가서 섬세한 관찰이 얼마나
이 시적 대상의 아름다움을 끄집어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너무나 흔하고 사소해서 그야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물방울" 이 시인의 눈과 마음을 통해
우주적 의미와 존재로서 무한하게 확대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시 창작을 위한 관찰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 여야 한다.
작은 사물 속에 깃들인 큰 세계, 큰 의미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그것을 알고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을 한번 둘러 보라.
거기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어떤 이들은 쓸거리,
즉 창작 소재의 빈곤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늘상 보던 낡고 진부한 눈을 빼 버리고 새롭게,
새로운 마음의 눈으로 사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기 무엇인가가 숨어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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