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던 날
임 현 숙
이삿짐 트럭이 도착하고 주섬주섬 보따리들을 내어놓으니
어떻게 저 짐들을 안고 살았나 싶게 수북해요
몇 해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
앞으로도 어쩌면 찾지 않을 것들도 다시 껴안고 가요
내 기름때와 체취가 묻어나는 미련에 가져갈 수 있다면 날숨도 담아가고 싶군요
빈 주먹 꼭 쥐고 세상에 와서 바리바리 많이도 꾸리고 살았네요
저 하늘로 영원히 이사할 때는 단벌 옷에 홀가분히 떠날 텐데
거추장스러운 일상이 자석에 못처럼 착착 달라붙어 삶이 천근이어요
속사람보다 겉사람 가꾸기에 푹 빠져있었나 봐요
내가 머물다 간 자리는 구석구석 웃음소리 머금은 행복자리이기를 바라지만,
이사 가던 날,
내 삶이 빠져나온 빈자리엔 눈물 자국에 잿빛 기억만 메케합니다.
-림(201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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