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되고 싶다/ 임보
나팔바지에 찢어진 학생모 눌러 쓰고
휘파람 불며 하릴없이 골목을 오르내리던
고등학교 2학년쯤의 오빠가 다시 되고 싶다
네거리 빵집에서 곰보빵을 앞에 놓고
끝도 없는 너의 수다를 들으며 들으며
푸른 눈썹 밑 반짝이는 눈동자에 빠지고 싶다
버스를 몇 대 보내고, 다시 기다리는 등굣길
마침내 달려오는 세라복의 하얀 칼라
'오빠!' 그 영롱한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토요일 오후 짐자전거의 뒤에 너를 태우고
들판을 거슬러 강둑길을 달리고 싶다, 달리다
융단보다 포근한 클로버 위에 함께 넘어지고 싶다
네가 떠나간 멀고 낯선 서울을 그리며 그리며
긴 편지를 지웠다 다시 쓰노라 밤을 새우던
열일곱의 싱그런 그 오빠가 다시 되고 싶다
- 시집『검은등뻐꾸기의 울음』(시학,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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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이 생경하지 않아 누구나 겪었음직한 첫사랑의 아련하고 풋풋한 이야기 같은데 정작 내게는 이런 추억의 근사치조차 없다. 어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명랑소설을 읽으면서 틀림없이 보았거나 그려낸 풍경이었겠으나 빵집에서 곰보빵을 먹은 기억이 도통 없으며, ‘세라복의 하얀 칼라’ 여학생으로부터 '오빠!'라는 환한 부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자전거 뒤에 그녀를 태우고 가다가 함께 자빠져 본 일은 더더욱 없다. 임보 시인은 소싯적에 꽤나 잘 나갔으리라 짐작되지만 어쩌면 시인께서도 몸소 겪은 상황이라기보다 그저 일반화된 보편적 추억의 영상을 막연히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한번 건들거려보고 싶다는 뜻 아니었을까.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희미하게 첫사랑을 환기하였으나 대개의 첫사랑이 그렇듯, 감정 선상을 아슬아슬 줄타기 하다가 자꾸 어긋나기만 해서 지금은 소실점이 어디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어설펐던 상열지사였다. 물론 그것도 ‘찢어진 학생모’를 벗어던진 이후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고등학교 2학년쯤의’ 나는 ‘푸른 눈썹 밑 반짝이는 눈동자에’ 한번 빠져보지도 못하고 무얼 하며 허송했나 싶다. 그렇다고 학구열에 불타올라 공부에 매진했던 것도 아니고 조금 건들거리는 패들과 가끔 어울리긴 했으나 찍찍 침을 뱉어내며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확실한건 마스터베이션을 습관처럼 해대고 먼 산을 자주 본 기억뿐.
결핍으로 많은 것을 꿈꾸었으나 궁극적인 결실을 맺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질이 없었다고 해서 소양마저 내 몸을 빠져나간 건 아니었다. 그 시절에도 가슴 두근거림과 선홍빛 부끄러움, 야릇한 흥분은 있었다. 경쟁자는 없었으나 질투와 선망의 감정은 뚜렷했고, 용기 없던 탓에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도 여러 번 놓쳤다. 우리는 충분한 아픔과 상처를 딛고서야 어른이 된다. 이렇게 운명적으로 다 늙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돌아가고 싶은 양지의 그때이다. 나야말로 임보 시인이 그려놓은 그림들을 다 불러들이고 싶다. ‘열일곱의 싱그런 그 오빠가 다시 되어’ 이제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싱그러운 풍경들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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