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울 막내 화이팅!
임현숙
막내아들이 며칠 후에 면접이 있어 입고 갈 옷을 사러 쇼핑몰에 갔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관문을 두드리는 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완전한 정장보다는 가벼운 정장이 좋을 것 같아 재킷과 바지, 그리고 어울리는 구두를 샀다.
모처럼 아들과 단둘이 쇼핑을 하며 예산 한도 내에서 좋은 것을 사주고 싶었는데,
그동안 적은 생활비를 쪼개 쓰느라 손이 작아졌는지 맘에 들어도 가격을 보곤 돌아서는 아들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검소한 것과 절제는 좋은 미덕이나 지나쳐 좀스러운 남자가 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은 소박하고 검소한 캐네디언의 정서에 물들어 알뜰 쇼핑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한국적 사고에 살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달걀이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닭을 사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서 아들의 속내를 헤아리고 싶었다.
요모조모 따져가며 쇼핑을 마치고 바짓단을 수선집에 맡길까 하다가 기다리기 싫어
내가 손바느질하려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 돋보기 안 쓰고 바늘귀에 실을 척척 잘 꿰었는데
이젠 어쩔 수 없이 코끝에 돋보기를 걸쳐야 하니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길이에 맞게 접어놓은 단을 열심히 공그르기 해서 다림질을 하려고 보니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게 보였다.
바깥으로 접어놓았으니 뒤집어 박아야 했는데 무심결에 그만 그대로 바느질을 해서
모내기하는 농부 바지처럼 걷어 놓은 꼴이 되었다.
스스로 밥통이라 꾸짖으며 실밥을 뜯고 다시 바느질했다 .
요즘 들어 하찮은 일에 실수하기 일쑤여서 나이듬을 실감하는 중인데 아프게 쐐기가 박혔다.
하지만, 슬프지만은 않다. 노을 길을 가는 내 등 뒤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이의 세월에는 해가 중천에 떠있을 터이니 나는 지는 해를 안고 기울어도 좋겠다.
다림질을 한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넥타이, 재킷, 구두까지 신고 선 아들은
내 눈엔 멋스러운 남자, '소지섭'처럼 보였다.
밴쿠버 소지섭이라고 할 때마다 딸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엄마 욕먹어!"
내 눈에 안경인데 뭘 어때서~
이제 며칠 후면 저 차림으로 첫 면접을 하러 가겠지.
원대한 꿈을 향한 첫 발걸음이 곧고 평탄한 길을 가기를 바라며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가 처음 본 세상이 거칠 것 없는 파란 하늘이기를 바라본다.
2013.08.09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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