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소식

라포엠(bluenamok) 2014. 4. 7. 07:34

 

                                                                                            

 

 소식/나희덕

 

 

 

 서늘해지는 바람에서 그대 소식 듣습니다.
 거리를 떠도는 걸 보았다고도 하고, 
 서릿발 일어서는 들판의 후미진 구석에서 길 잃은 고라니 새끼처럼 웅크리고 있었다고도 하고. 
 바람은 늘 거대하게 날개 편 풍문의 새와도 같습니다. 무사하신지요.

 한때는 그대가 치자꽃 핀 울타리를 따라 걷고 있다 해서 온종일 치자꽃 향기에 휩싸이기도 했고,
 
한때는 그대가 서리 내린 들판을 걷고 있다 해서 칼날 같은 서릿발 위에 서는 것도 같았습니다.
 참 많은 세월과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꽃 하얗게 핀 울타리를 따라 걷기도 했고,
 맨발로 서릿발 위를 걷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수많은 내가 나일 뿐임을 알 것도 같습니다.
 그것이 또한 슬픔임을 알 것도 같습니다.

 그렇듯이 당신에 관한 많은 풍문이 당신의 빈자리를 가리키고 있을 뿐임을 알 것도 같습니다.
 그것이 무한한 연민임을 알 것도 같습니다.
 그것이 덧없이 왔다 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란 말씀인 줄을 알겠습니다.
 무사하신지요. 바람은 거대하게 날개 편 풍문의 새와도 같습니다.

 저에게 치자꽃 향기를 한 번 더 보내주십시오.
 이제 사랑하는 것들 위에 치자꽃 향기 하나 보탠들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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