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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글밭/혼잣말·그리운 날에게

뚝배기 같은 사람

라포엠(bluenamok) 2011. 9. 17. 06:44

 

 

 

 

 

 

뚝배기 같은 사람

                    /안개비 임현숙

 

 

                        

주부들은 아침을 먹은 설겆이를 하고 돌아서기 바쁘게 점심 준비를 해야한다.

대충 먹는다 해도 찌개든 국이든 한가지는 챙겨야 했던 내 시집살이 시절,

그렇게 점심을 치르고 나면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다시 저녁 찬거리를 마련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그래도 살림을 하는 재미도 솔솔했다.

예쁜 그릇을 좋아하는 탓에 찬장마다 크고 작은 예쁜 접시들이 그득했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눈요기에 맛있어야 침이 꼴깍 넘어가며 손이 간다

무언가 부족한 듯한 맛이어도 예쁜 그릇에 먹음직스럽게 담아 놓으면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돌아가신 오빠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음식을 맛있게 하던 내 위의 언니 집에서 음식을 먹으면 푸짐해서 좋고

막내 집에 오면 우선 눈이 즐겁고 맛도 깔끔해서 좋다.

어느 그릇에 어떻게 담느냐가 상차림의 비결이다.

국물 요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열 전도율이 높은 양은 냄비, 보온이 좀 더 잘되는 스텐 냄비...

늦게 끓어도 오래 보글거리는 뚝배기 ...

어디에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기본 반찬에 자글자글 뚝배기만 있어도 숟가락 움직이기 바쁜 밥상이었다

 

사람도 이런 냄비에 견주어 본다면

늦게 달구어져도 오래 보글거리는 뚝배기 같은 사람,

친하기 어려워도 갈수록 친밀해지고 그 인연이 오래가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어떤 만남이든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한다

마음을  열어 보여주었을 때  진심으로 이해하고 감싸주는 사람,

앞에서 감언이설로 부추기며 돌아서서 다른 말을 하지않는 사람,

손잡으면 금새 달구어졌다가  눈에 안 보이면 금새 식어버리는

양은 냄비같은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았으면 싶다.

가을 햇볕에 풍경이 달아오르고 있다

저 가을 풍경 아래에서 정말 진솔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큰 소리 내지않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

마음이 따뜻해서 말없이 있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사람,

발 밑에 낙엽 한잎도 함부로 밟지않는  사람,

슬픈 드라마를 보며 눈물 흘릴줄 아는 사람,

투박해도 담겨진 것을 오래 뜨겁게 안을 수 있는

진정한 뚝배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Sep.16,2011 Lim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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