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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글밭/혼잣말·그리운 날에게

그리운 한가위

라포엠(bluenamok) 2011. 9. 10. 07:31

 

 

 

 

 

그리운 한가위

                    안개비 임현숙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차례 민족의 대이동이 있곤 한다.

빈부를 무론하고 일가 친척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귀한 음식을 나누며 담소하는 시간을 갖는다.

올 추석도 그러하리라.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맞아하는 명절은 가슴이 시려서 달갑지 않다.

명분이 있어 고향을 등지긴 했지만 가족이 흩어져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내 경우에도 이렇게 오랜 시간 남편과 떨어져 지낼 줄 몰랐다.

처음 생각은 남편이 우리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노년에도 고국과 이 곳을 오가며 살 계획이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나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 이시다 '는 진리의 말씀이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직도 기러기 가족이지만

언젠간 함께 모여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외며느리이다.

위로 두 분의 시누이가 계시지만 남편이 이대 독자여서 사촌이 없다.

가까운 친척이 없으니 대소사가 없을 듯 해도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이라서 손님이 끊일 새가 없었다.

오죽하면 신혼 초에도 주말마다 "형수니임~" 하며 후배들이 줄줄이 찾아와 잠을 자고 갈 정도였으니.

한 번도 찌푸리지 않고 기꺼이 새벽에 밥참까지 만들어 주어 인기 최고였다.

지금도 형수가 만들어준 도토리 김치 무침에 밥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고 그 후배들이 말한다.

집안 대소사에도 시누이 가족들과 친정 가족이 함께 모이기 일쑤였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말뚝에도 절을 한다?

평소 말없이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정이 많아 친정 식구에게 참 잘했다.

오빠와 언니 형부가 우리 남편을 무척 사랑하기도 했지만

남편도 내게 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이 위했다.

그런데 모일 때마다 나는 아팠다.

열심히 장을 보고 음식 장만을 해 놓고 막상 당일이 되면 얼굴이 노래져서 누워버린다.

편두통, 의사의 진단은 공주병이란다.

피곤하지 말고 신경쓰지 말고 재미있게 살으라나.

일단 한 번 아프면 진통제도 듣지않고 구토와 두통으로 잠도 못자고 물도 못마셨다.

그러니 일이 무서울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아픈 게 무서워서 명절이 겁이 났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지만 음식은 내가 해주길 식구들이 바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솜씨 부려 장만한 음식을 언니가 상을 차리고 치우고 그러고 나면 한바탕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남편은 일부러 져주며 지갑을 열었고 형제 자매들이 깔깔거리느라 유리창이 깨질 듯 했다.

 

   이젠 그 때처럼 모일 수 없다.

오빠는 돌아가시고 형부도 암 투병 중이고 나는 먼 곳에 있고...

세월이 다 흩어놓았다. 가족의 사랑도 끈끈한 유대도 명절의 즐거움도...

머리가 빠개지는 아픔이 있다해도 다시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라보지만

똑같을 수 없음에 가슴 아프고 그 시간이 그립다.

명절이 어떤 이들에게는 아픔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예전엔 몰랐었다.

그 아픔의 자리에서야 비로소 깨달으며 훗날 오늘도 그리워 질 것 같아

오늘 하루에 온 힘을 다하기로 마음 먹는다.

 

 

 

Sep.09,2011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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