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티끌이 티끌에게」 감상 / 문태준
티끌이 티끌에게 -작아지기로 작정한 인간을 위하여 김선우 (1970~) 내가 티끌 한 점인 걸 알게 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깁니다 나 하나로 꽉 찼던 방에 은하가 흐르고 아주 많은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되죠 드넓은 우주에 한 점 티끌인 당신과 내가 춤추며 떠돌다 서로를 알아챈 여기, 이토록 근사한 사건을 축복합니다 때로 우리라 불러도 좋은 티끌들이 서로를 발견하며 첫눈처럼 반짝일 때 이번 생이라 불리는 정류장이 화사해집니다 가끔씩 공중 파도를 일으키는 티끌의 스텝, 찰나의 숨결을 불어넣는 다정한 접촉, 영원을 떠올려도 욕되지 않는 역사는 티끌임을 아는 티끌들의 유랑뿐입니다 .................................................................................................................................... 티끌은 티와 먼지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니 아주 작은 것을 뜻한다. 그러나 ‘나’를 티끌과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일개의 잘디잔 부스러기처럼 하찮게 여기고 변변찮다고 간주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를 비록 한없이 연약하지만, 온전함을 갖춘 우주적 존재로 인식한다는 맥락일 테다. 시인은 한 산문에서 “작고 여리고 홀연한 그 아름다움들에 기대어 오늘이 탄생하고 내일이 기다려집니다.”라고 썼고, 어느 시에서는 “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는 거/ 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라는 거”라고 썼다. 이 시에서 시인은 티끌로부터 “유랑의 리듬”을 읽어낸다. 그리고 유랑의 리듬은 춤이라고 말한다. 춤은 생명이 가진 흥이면서 생기이면서 활발하고도 능동적인 움직임일 텐데, 우리가 작은 존재이지만 이렇게 춤을 추는 바로 그 주체라고 생각하니 꽤 멋있게 느껴진다. 당신과 나만 춤의 존재일까. 빗방울과 눈송이, 바람과 물결, 화초의 싹틈, 일출과 석양도 춤이다. 문태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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