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곰소항에서/이건청

라포엠(bluenamok) 2011. 10. 15. 10:55

곰소항에서

 

   이건청

 

 

 

곰소 염전 곁 객사에 누워

하루를 잔다.

 

짠 바닷물은

마르고, 다시 마르며

결장지까지 와서

소금으로 가라앉는데,

 

이 마을 드럼통들 속에서는

새우와 바닷게들도

소금을 끌어안은 채

쓰린 꿈속에서

제 살을 삭혀

젓갈로 곰삭고 있을 것인데,

 

변산 바다 밀물의 때,

바다는 밀고 밀며

다시 곰소항으로 돌아오면서

흰 포말로 낯선 새들을 부르고,

산비탈 호랑가시나무 숲을 부르며,

젓갈 가게에 쌓인

드럼통들을 찾아와

드럼통 속 새우와 참게들에게

풍랑의 바다 소식을 전하면서

곰삭은 황혼도 조금씩,

밀어 넣어 주고 있구나,

아주 잊지는 않았다고

젓갈로 익더라도 서로 잊지는 말자고

밤새 속삭여주고 있구나

 

곰소 염전 곁 객사의 사람도

내소사 전나무 숲 위에 뜬

초롱초롱한 별도 몇 개

꿈속에 따 넣으며

쓰린 잠을 자는데,

소금을 끌어안고 잠자며

낯선 방에서 뒤척이는데

젓갈로 삭아가고 있는데……

 

 

 

                              —《현대시》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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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 1942년 경기도 이천 출생.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박목월 추천). 시집 『이건청 시집』『목마른 자는 잠들고』『망초꽃 하나』『청동시대를 위하여』『하이에나』『코뿔소를 찾아서』『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푸른 말들에 대한 기억』『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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