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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5. 중앙일보 기고/새날의 일기

라포엠(bluenamok) 2023. 12. 18. 03:16

 

새날의 일기

 

임현숙

 

 

어제는

등 뒤로 저문 것들이 더부룩해

되새김질하곤 했기에

오늘 만나는 새날 앞에

맑은국 한 사발 정화수처럼 내어놓습니다

 

제야의 종소리 한울림마다 빌고 빌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숱한 바람들은

그 문장조차 희미해지고

빈손엔 미련만이 돌아앉아 있습니다

 

생의 여름은 저물어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가을 빈 벌판에서

허옇게 서리 내린 머리 조아리며

작은 바람 뭉치 하나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새날에는

뒤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텃밭에 미운 가라지가 싹 트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소서

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소 짓게 하소서

 

낡은 나무 계단처럼 삐그덕거리는 사연을

제야의 종소리에 둥 두웅 실어 보내며

첫사랑 같은 새날을

맨발로 마중합니다.

 

 

-(2024 새해를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