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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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2012' 밴쿠버 문협 신춘문예 입상작

라포엠(bluenamok) 2012. 3. 24. 03:31

                                 

                                            

 

 

 

보라, 꽃불을

               임현숙

 

 

보라,

강 건너 마을에

이글이글 솟아오르는 꽃불을.

 

야금야금 어둠을 삼키며

붉은 아침이 찾아들어

지난밤 별들의 시름이

하얗게 서리꽃으로 앉은 자리에

영롱한 빛이 발하는 것을.

 

사랑도 아침 햇살처럼

그늘진 마음에 꽃불을 놓았다.

 

아픔을 어루만진 사랑아,

슬픔까지도 사랑한 사랑아,

보라,

가슴속에 끓고 있는 마그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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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안개

        임현숙

 

 

 

밤안개가 촉수를 뻗어
분주한 거리의 소음을 먹고
너절한 쓰레기도 삼켜버리고
노숙자의 헙수룩한 일상도
어느 등이 굽은 노인의 구시렁구시렁도
상냥한 점원의 미소도 꿀꺽 해버렸다

밤인지 아침인지 모호한 시간
칼날 같은 그리움으로 파닥거리는 심장에
파도처럼 밀려와 삼킨 것들을 쏟아낸다

주눅이 든 일상,
나른한 대화. 물거품 같은 이야기들.
아침이면 지워질 것들.
포식한 허무를 야금야금 배설하고선
내 그리움마저 탐을 낸다

그래,

서글픈 이야길랑 다 가져가라지
아침 햇살에 촉수가 타 버리면
남은 건 못다 이룬 그리움과 희망뿐.

너는 내 잠마저 앗아가고 말았다.

 

 

 

* 2012' 밴쿠버 문인협회 신춘문예 시 부문 가작 입상작 : <보라, 꽃불을>, <밤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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