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유산 상속

라포엠(bluenamok) 2014. 5. 25. 09:54

 

 

 

 

 

유산 상속-문정희

 

 

 

 

 

 

비밀이지만 아버지가 남긴

폐허 수만 평

아직 잘 지키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척박한 그 땅에

태풍 불고 토사가 생겨

때때로 남모르는 세금을 물었을 뿐

광기와 슬픔의 매장량은 여전히 풍부하다

열다섯 살의 입술로 마지막 불러본

아버지! 어느 토지 대장에도 번지가 없는

폐허 수만 평을 유산으로 남기고

빈 술병들 가득 야적해 두고

홀연 사라졌다

열대와 빙하가 교차하는 계절풍 속에

할 수 없이 시인이 된 딸이

평생을 쓰고도 남을

외로움과 슬픔의 양식

이렇듯 풍부하게 물려주고

그는 지금 어디에서

홀로 술잔을 들고 있을까

 

 

 

-시집 '나는 문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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