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상속-문정희
비밀이지만 아버지가 남긴
폐허 수만 평
아직 잘 지키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척박한 그 땅에
태풍 불고 토사가 생겨
때때로 남모르는 세금을 물었을 뿐
광기와 슬픔의 매장량은 여전히 풍부하다
열다섯 살의 입술로 마지막 불러본
아버지! 어느 토지 대장에도 번지가 없는
폐허 수만 평을 유산으로 남기고
빈 술병들 가득 야적해 두고
홀연 사라졌다
열대와 빙하가 교차하는 계절풍 속에
할 수 없이 시인이 된 딸이
평생을 쓰고도 남을
외로움과 슬픔의 양식
이렇듯 풍부하게 물려주고
그는 지금 어디에서
홀로 술잔을 들고 있을까
-시집 '나는 문이다'에서
'시인의 향기 > 바다 한 접시(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몸의 시간 (0) | 2014.05.29 |
---|---|
달팽이 (0) | 2014.05.26 |
찔레꽃 (0) | 2014.05.24 |
강물-편지1/고정희 (0) | 2014.05.20 |
그대 생각-고정희 (0) | 2014.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