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꼬리 - 조경숙
시 쓰는 걸 재주라고 하나
이미 글을 봐서 알겠지만 내 재주란 물구나무서기도 못하는데
몇 개의 꼬리를 달고 공중회전을 하여야하나
어려서 서커스를 볼 때 할머니 그랬다
저렇게 몸을 돌돌 말아 공중돌기를 하다가
작은 상자에 들어가려면 식초를 매일 한 그릇씩
꿀꺽꿀꺽 마셔야된다고 그러면 뼈가 녹아
됫박만한 그릇 속으로 몸이 쏘옥 들어간다고
그날 밤부터 세상의 모든 재주는,
뼈를 녹이는 거라고 믿었다
슬픔은 아름답고 작은 몸이라고 생각했다
시큼한 그대 말이 좋다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되어 고요하고 컴컴한 밤
공중 열 두 바퀴 재주를 부리며
그대의 빨간 간까지 쏙 빼 먹는 시를 쓰고 싶다
밤새 글을 먹어도 시인의 피가 모자라는 요즘,
몸에서 꼬리가 자라길
그러나 꼬리만 자라고 재주를 못 부리면 그건 또 어쩌나
구미호 그 숙명의 시그널
『굴포문학』2015.
조경숙 시인
강원 영월 출생
제23회 인천시민문예대전 시 부문 대상 수상
2012년『시와정신』‘진통제 외 4편’으로 등단
2014년 시집「절벽의 귀」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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