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사랑은 늘 기다림이다.

라포엠(bluenamok) 2011. 11. 12. 16:22

 

 

        

 

 

 

 

사랑은 늘 기다림이다.

                        /안개비 임현숙

 

 

팔순의 노모가 아들을 기다리느라 잠을 잊었다.

캄캄한 곳에서 의자에 기대어 괘종시계가 두 번을 울려도

꾸벅꾸벅 졸며 마냥 기다렸다.

며느리인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차마 앞서 나서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40에 낳은 아들을 홀로 키우시며 아들이자 남편겸 애지중지 하시며 의지하셨으니

아들을 장가보내고 난 후 상실감이 크셨을 것이다.

그 당시엔 아들에게 집착하시는 어머니가 싫고 이해가 안되었다.

신혼 초에 종일 기다리던 신랑을 예쁘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여자라면 다 갖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대문앞에서 기다리다 신랑이 보이면 달려가 안기고도 싶고

벨이 울리면 앞치마 바람으로 마중하며 목에 매달려보고도 싶었지만

늘 어머니가 한 발 앞서 계셨기에 뒷전에서 웃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 방에까지 따라 들어 오셔서 우리가 잠자리에 들어야 어머니 방으로 물러 가셨고

아침에 내가 일어난 기척만 들리면 우리 방으로 건너 오셔서 아들을 챙기셨다.

답답하고 속상한 심정을 표현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어느 날엔가 어머니 앞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신경성 위장병에도 걸려 위내시경 촬영도 해보았었던 기억이 난다.

내 나이 오십줄에 들어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심정을 알 듯 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전부였다.

아들이 우상이었고 존재의 이유였고 행복이어서

하루 종일 아들을 기다리고 일초라도 아들 곁에 머무르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겐 사랑이 기다림이었던 것을 그 땐 몰랐다.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며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 동안

나 또한 신랑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쳤다.

사람 좋아하고 술을 즐기다 보니 늘상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를 하는 탓에

티비에서 애국가가 울리고 난 후 책을 들여다 보다 눈이 피곤해지면

뜰에 나와서서 별을 바라 보고, 개나리꽃이 피고 지고,

수선화, 장미, 능소화...나목의 계절이 올 때까지 사계절을 그렇게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그 날들,

기다림에 능소화를 짓 이기고 기다림에 기린 목이 되어도

사랑이라서, 미워할 수 없어서 숱한 밤을 새웠다.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고 병들게 한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또 하나의 기다림에 마음을 동여맨다.

사랑은 늘 기다림이다.

 

 

                      Sep.15,2011 Lim

 

 

 

 

                  * 이 글은 전에 썼던 시를 산문으로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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