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또 한 번의 생일에

라포엠(bluenamok) 2012. 9. 2. 04:15
 
 

또 한 번의 생일에

 

                                              임현숙

 

 

 

가을 문 앞에서

어머니는 낙엽을 낳으셨지

바스러질까 고이시며

젖이 없어 홍시를 먹이던 어미의 맘

반백이 넘어서야 알았네

소금 반찬에 성근 보리밥

밀 풀 죽도 먹어보았지

또 한 번의 생일에 맛보는

이밥에 기름진 반찬도

엄마 생각에 쌉싸름하네

 

이제 생일의 의미는

소풍 길의 종착역이 가까워지는 것

영혼의 포장지는 낡아가는데

아직도 마음은 신록의 숲이어서

가을빛 사랑을 꿈꾸기도 하지

내 생에 가장 빛나던 순간

함께하던 모든 것들이 어른거리네

 

유리창을 쪼갤 듯 쏟아지는 햇살이

환희로 숨 가쁘게 하는 구월 둘째 날

어딘가의 추억 속에 유월의 장미로 살아있다면

가파른 소풍 길이 쓸쓸하진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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