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나목의 글밭/시1·조금만을 기다리며

그 푸르던 오월

라포엠(bluenamok) 2015. 5. 2. 01:35


        그 푸르던 오월 나목 임현숙 오월, 그 푸른 숲을 기억하시나요 당신을 만난다는 설렘에 예쁘게 보이려고 새 하이힐을 신고 나갔지요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뒤꿈치에 물집이 잡혔어요 아프지 않은 척했지만,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에 당신은 빙그레 웃으며 등을 내밀었어요 부끄러워 신발을 벗어드는 나를 솔개 병아리 채듯 등에 올려놓았지요 버스 정류장까지 업혀가면서 당신의 넓고 단단한 등이 좋았답니다 우리 인연은 그렇게 움이 텄어요 말수가 적은 당신에게 자석처럼 이끌렸지요 항상 같은 넥타이만 매고 다녔던 당신, 감색 양복이 잘 어울리는 당신에게 아침마다 다른 넥타이를 매어주고 싶어 당신의 아내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팔베개는 멀어졌지만 이따금 술이 거나해지는 날이면 팔을 슬쩍 내밀어 날 웃게 합니다 당신이 늘 하는 말처럼 사랑은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인 것 같아요 붉은 빛 바래었을지라도 첫느낌은 가슴에 살아있답니다 여보, 그날의 장릉 숲길을 기억하시나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제 볼이 발그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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