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문학 제 6호 수록 글/바람이 분다, 서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유리창 너머 풍경이 저마다 펄럭이며 세월이 간다
나부끼는 은발이 늘어난 만큼 귀향길도 멀어져간다
유학 바람에 실려 와 아이들은 실뿌리가 굵어가지만
내 서러운 손바닥은 서툰 삽질에 옹이가 깊어진다
툭 하면 응급실에 누워있던 오랜 두통을 치료해 준 은인의 땅
무수리로 살아도 알약에서 놓여나니 천국의 나날인데
이맛살이 깊어지니
미련 없이 떠나온 고향이 옹이를 속속 담금질한다
바람이 분다
실핏줄에 들엉긴 저린 것들이
고향으로 가자고 역풍이 분다.
-림(20190820)
2021.09.03. 밴중앙일보 게재
서리
밤새 앓던 아버지의 잿빛 신음이
아침 마당에 내려앉아
하염없이 눈물지었습니다
느지막이 얻은 막내딸
결혼식도 못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이 시린 꽃으로 피었습니다
첫 월급으로 사드린 털모자로 백발을 감추듯
자신의 무능력도 깊이 묻고 싶으셨을
내 늙으신 아버지
못 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셨지만
서릿발 세월을 묵묵히 걷다 가신
그 아픔이
내 삶의 모퉁이에 서리서리 내려앉습니다.
-림(20130111)
2013.02.13.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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