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 이병률

라포엠(bluenamok) 2016. 8. 28. 01:36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 이병률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시집『찬란』(문학과 지성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