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앗싸, 죽은 여자 / 황봉학

라포엠(bluenamok) 2014. 9. 25. 07:35

 

 

 

 

 

 

 

앗싸, 죽은 여자 / 황봉학

 

 

 

나의 지갑 속에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어떤 때는 죽은 남자를 팔아 산 여자를 사기도 하는데

앗싸노래방에서 도우미를 신청하고 죽은 남자를 내밀면 아주 효험이 있다.

운이 좋으면 쭉쭉빵빵인 아가씨를 사기도 하고

막 요염이 덧칠해진 30대 여인을 달려오게 할 수도 있다.

싱싱하게 서비스하던 여자들이 시들해지면

나는 그 여자들에게 죽은 남자를 덤으로 써먹기도 한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아주 근사하게 생긴 남자인데

여자들의 브래지어 속이나 핫팬츠 속에 찔러 넣어주면 효과가 아주 좋다.

그 남자의 능력은 여자들이 엉덩이를 흔들거나 살짝살짝 가슴을 보여주는 정도의 약효는 있지만, 더 이상의 효과는 없다.

그때는 할 수 없이 죽은 여자를 불러내어야 한다.

내가 죽은 여자를 두세 겹으로 겹쳐 흔들면 팔려온 여자는 마술에 걸린 듯 옷을 벗는다.

여성 상위시대!

여자들은 콧대가 점점 높아진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부적처럼 죽은 여자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바야흐로

죽은 여자가 산 여자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시』 (2012년, 11월)

 

 

 

 

 

 

텃밭에서

 

황봉학

 

 

아아, 여기는 옥수수 한 알을 심으면

팝콘이 펑펑 터지는 나라

완두콩이 꽁무니에 지구를 달고

천왕성으로 명왕성으로 날아가는 나라

 

땅은 우둔한 휘파람새 같아서

제 품에 품은 것은 기어이 부화시키고 말지만

 

감자 한 알 낳은 적 없는 나는

삶은 감자를 심고 감자 꽃을 기다린다

노란 눈의 씨감자를 기다린다

뻐꾸기 한 쌍 밭두렁에 날아와

어제 심은 옥수수가 익지 않는다고 뻑꾹 뻐뻑꾹 칭얼대는

이 가이 없는 텃밭에 몰아치는 저녁

 

 


 

'시인의 향기 > 영혼의 비타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행-이상윤  (0) 2014.10.07
애인 있어요- 홍성란  (0) 2014.09.30
아비가 오다/광토 김인선  (0) 2014.09.13
스며드는 것 - 안도현  (0) 2014.08.22
사랑도 나무처럼 / 이해인  (0) 201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