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악보-도종환

라포엠(bluenamok) 2016. 4. 25. 14:34

      

 

 

       악보-도종환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도종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2011)

'시인의 향기 > 영혼의 비타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오월 - 노천명  (0) 2016.05.03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0) 2016.04.29
오래된 독서 - 김왕노  (0) 2016.04.14
앉은뱅이 밥상 하나가 / 서수찬  (0) 2016.04.13
신설동 밤길 - 마종기  (0) 201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