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말없이 이야기한다
/안개비 임현숙
세상은
밤보다 짙은 안갯속에 묻혀 조용하고
하얀 벽 위에는
12라는 숫자 하나가 목매달려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한 장씩 떨어져 나가던 시간이
어제와 똑같이 줄지어 있는데
유독 12라는 큰 글자가 눈을 찌르며
다가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한다
5일은 공과금 결제일
14일은 막내 오는 날
15일은 면사포 쓰던 날
25일은 성탄절
그리고
기억해야 할 잔잔한 일들을 종알댄다
31일까지 몰아붙일 12월이
어서 숨지기를 기다리며
나의 달력은
2012년 정월에 미리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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