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2023/12/18 3

2024.1.5. 중앙일보 기고/새날의 일기

새날의 일기 임현숙 어제는 등 뒤로 저문 것들이 더부룩해 되새김질하곤 했기에 오늘 만나는 새날 앞에 맑은국 한 사발 정화수처럼 내어놓습니다 제야의 종소리 한울림마다 빌고 빌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숱한 바람들은 그 문장조차 희미해지고 빈손엔 미련만이 돌아앉아 있습니다 생의 여름은 저물어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가을 빈 벌판에서 허옇게 서리 내린 머리 조아리며 작은 바람 뭉치 하나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새날에는 뒤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텃밭에 미운 가라지가 싹 트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소서 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소 짓게 하소서 낡은 나무 계단처럼 삐그덕거리는 사연을 제야의 종소리에 둥 두웅 실어 보내며 첫사랑 같은 새날을 맨발로 마중합니다...

2023.11.18. 밴조선 기고/가을날

11월 18일 토요일 2023 by Vanchosun - Issuu 11월 18일 토요일 2023 issuu.com 가을날 임현숙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장 하늘빛 깊어져 가로수 이파리 물들어가면 심연에 묻힌 것들이 명치끝에서 치오른다 단풍빛 눈빛이며 뒤돌아 선 가랑잎 사람 말씨 곱던 그녀랑 두레박으로 퍼올리고 싶다 다시 만난다면 봄날처럼 웃을 수 있을까 가을은 촉수를 흔들며 사냥감을 찾고 나무 빛깔에 스며들며 덜컥 가을의 포로가 되고 만다 냄비에선 김치찌개가 보글거리고 달님도 창문 안을 기웃거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