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영혼의 비타민

아스피린 / 김미옥

라포엠(bluenamok) 2016. 5. 5. 00:44

아스피린 / 김미옥 할머니는 토끼표 ABC로 이산의 슬픔을 이기셨고 어머니는 종근당 사리돈으로 가난을 견디셨다 사는 건 고통이고 진통제는 희망이었다 둘 사이는 이스트로 부푼 빵처럼 화기가 아랫목에 가득했고 부풀고 부풀다 가끔 터지기도 했는데, 미워하지도 않았지만 서로 불쌍해 하지도 않았다 사철 그림 같은 아버지 대신 할머니는 병아리 장사도 했고, 어머니는 사과 행상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우리 집에는 팔지 못한 사과가 늘 넘쳤다 어느 해 토끼표 ABC가 단품된 지 얼마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꽃상여를 뒤따르며 사무치게 울던 어머니 종근당 회사가 건재하니 아직 어머니는 안심이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통증이며 그리움이며 절망인 그럴 때마다 먹는 아스피린 어쩌다 목에라도 걸리면 쌉싸름한 씀바귀 맛 사르르 내려가 녹여줘 매 순간 숨바꼭질하듯 만나는 행운 같은 것 때로는 올라오는 생목을 즐기며 앞으로 가야 한다 중독된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