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사는 여자
추억이 저무는 창가에서

시인의 향기/바다 한 접시(여)

살아 있어야 할 이유

라포엠(bluenamok) 2014. 5. 7. 07:36

살아 있어야 할 이유

나희덕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 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 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는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