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 / 김사인
나 이제 눕네
봄풀들은 꽃도 없이 스러지고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왔나 봐
저물어가는데
채독 걸린 무서운 아이들만
장다리밭에 뒹굴고
아아 꽃밭은 결딴났으니
봄날의 좋은 별과
환호하던 잎들과
묵묵히 둘러앉던 저녁 밥상 순한 이마들은
어느 처마 밑에서 울고 있는가
나는 눕네 아슬한 가지 끝에
늙은 까마귀같이
무서운 날들이
오고 있네
자, 한 잔
눈물겨운 것이 어디 술뿐일까만
그래도 한 잔
<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중에서 『창비시선』>
'시인의 향기 > 나물 한 바구니(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짝 붙어서다 / 김사인 (0) | 2015.01.17 |
---|---|
그림자가 없다 / 김사인 (0) | 2015.01.17 |
지상의 방 한칸 / 김사인 (0) | 2015.01.16 |
고향의 누님 / 김사인 (0) | 2015.01.16 |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 김사인 (0) | 2015.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