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소항에서
이건청
곰소 염전 곁 객사에 누워
하루를 잔다.
짠 바닷물은
마르고, 다시 마르며
결장지까지 와서
소금으로 가라앉는데,
이 마을 드럼통들 속에서는
새우와 바닷게들도
소금을 끌어안은 채
쓰린 꿈속에서
제 살을 삭혀
젓갈로 곰삭고 있을 것인데,
변산 바다 밀물의 때,
바다는 밀고 밀며
다시 곰소항으로 돌아오면서
흰 포말로 낯선 새들을 부르고,
산비탈 호랑가시나무 숲을 부르며,
젓갈 가게에 쌓인
드럼통들을 찾아와
드럼통 속 새우와 참게들에게
풍랑의 바다 소식을 전하면서
곰삭은 황혼도 조금씩,
밀어 넣어 주고 있구나,
아주 잊지는 않았다고
젓갈로 익더라도 서로 잊지는 말자고
밤새 속삭여주고 있구나
곰소 염전 곁 객사의 사람도
내소사 전나무 숲 위에 뜬
초롱초롱한 별도 몇 개
꿈속에 따 넣으며
쓰린 잠을 자는데,
소금을 끌어안고 잠자며
낯선 방에서 뒤척이는데
젓갈로 삭아가고 있는데……
—《현대시》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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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 1942년 경기도 이천 출생.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박목월 추천). 시집 『이건청 시집』『목마른 자는 잠들고』『망초꽃 하나』『청동시대를 위하여』『하이에나』『코뿔소를 찾아서』『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푸른 말들에 대한 기억』『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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