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밤에 섣달그믐 밤에 임 현 숙 섣달그믐 돌아온 탕아처럼 예배실로 들어갔다 복음송도 새롭고 찬송가 가락도 변하고 따라 부르는 음성엔 뜨거움이 없었다 다시 돌아오기에 너무 멀어진 생명 시냇가 얼어붙은 심장이 가벼운 입술로 송구영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밤눈이 하얗게 길을 덮고 있..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2.30
12월을 달리며 12월을 달리며 임 현 숙 한 세월의 종착역입니다시간의 나래에서베짱이처럼 지내던 날을 지우며이마를 낮춰손끝에 가시가 돋고발목이 가늘어지도록 달려왔습니다대못이 박히고무릎 꺾는 날도 있었지만발자국마다 반성문을 각인한 후낡은 지갑은 늘 배가 고파도철든 눈동자엔겁 없는 미소가 찰랑댑니다겨울나무처럼 허울을 벗고 나니어느 별에 홀로 떨어져도삽을 들겠노라고앙상한 발가락이 박차를 가합니다그토록 기다리던새봄이 오지 않는다 해도해쓱한 볼이 터지라웃으며 달리렵니다. -림(20141205)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2.13
가을과 겨울의 사이 저쯤 가을과 겨울의 사이 저쯤 임 현 숙 가을이 그리는 수채화를 보노라면 고즈넉한 풍경 한 점이 애틋합니다 가을이 무르익은 어스름 녘 가로등 그윽이 눈을 뜨고 소슬한 바람 한 자락 갈잎 지는 곳 나처럼 외로운 벤치 하나 쓸쓸함이 황홀한 그 자리에 앉으면 풍경 저편에 사는 추억이 천리..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1.30
깃털 같은 가벼움 깃털 같은 가벼움 임 현 숙 가을 나무가 바람이 탐하고 지나간 욕망의 옷을 벗는다 듬성듬성 빈자리로 파란 하늘이 상큼하고 커피점 창가에 연인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비움의 미학이다 아름다운 정점에서 버릴 줄도 아는 나무처럼 화려한 연회 복을 벗고 산다는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일..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1.10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 임 현 숙 11월의 나무는 공연을 마친 연극배우처럼 관객이 썰물 진 무대 붉은 조명등을 하나둘 끈다 붉은 기염을 토할 때마다 고막을 찢던 탄성 더욱 열연하던 이파리들도 박수받으며 퇴장한 후 못다 한 욕망의 갈색 등 바람의 밭은기침에 아슬아슬한 초침의 그네를 탄다 연륜..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1.06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그 무엇이라도 좋으리 임 현 숙 가을엔 무엇이 되어도 좋으리 들녘을 나는 한 줄기 바람 논두렁 밭두렁 가 널브러진 들꽃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 그 무엇이라도 감사하리 노랗게 빠알갛게 익어 가는 풍경 속에 저무는 노을이어도 행복하리 호흡 있음이 경이롭고 꽃이라 부르는 그대 있..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0.13
가을 나무 가을 나무 임 현 숙 머얼리 노을이 손짓하는 언덕에 빈손으로 선 나는 가을 나무입니다 갈 볕이 붉은 물 들인 자리 샘 많은 바람이 쓸어내면 데구루루 내 이름표 붙은 이파리들이 저 시공으로 사라집니다 하나, 둘 이 세상 소유문서에서 내 이름이 지워집니다 노을빛이 익어갈수록 나는 .. 나목의 글밭/추억의 서랍에서 201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