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방법★
/ 한겨레 신문 연재물 (2008년 5월 16일부터)
*** 좋은 글 쓰려면 먼저 술·연애와 친하세요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안도현 시인이 시를 쓰고 읽는 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을 새롭게 연재한다. 대한민국에서 시를 가장 잘 쓰는 이 중 한 사람인 안 시인의 안내를 받아 시와 연애에 빠져 보자
지루한 일상 너머 소통과 상상 가능
시집은 언제든 연습할 수 있는 ‘악기’
맛난 음식 많이 먹어야 요리도 잘해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 곧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이 세 마디의 가르침은 10세기 중국 북송 때의 문인 구양수가 남긴 말이다. 자그마치 천 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때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 가지의 순서를 편의대로 바꾸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엔 실로 벅차기 짝이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나는 시를 쓰려는 당신에게 색다른 세 가지를 주문하려고 한다.
첫째, 술을 많이 마셔라. 그렇다고 혼자 마시면 안 된다.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주정을 부리기 위한 약물이 아닌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지루한 일상 너머를 꿈꾸는 일은 시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시인은 일상이라는 유리그릇을 박살내는 자가 아니다. 유리그릇에 빗금을 긋는 자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쓰려거든 백 잔의 술을 마신 다음에 쓰라. 그렇다고 해서 술이 깨지 않은 비몽사몽의 시간에 펜을 잡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있어도 ‘취중진문’이라는 말은 없다. 나는 지금도 ‘주력(酒力)은 필력(筆力)’이라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말로 학생들을 꼬드겨 술잔을 권한다.(단,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권하지 않으며,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할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둘째, 연애를 많이 하라.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무릇 모든 연애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연애시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애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연애감정도 없이 시를 쓰려고 대드는 일은 굳은 벽에 일없이 머리를 부딪치는 것과 같다. 담쟁이넝쿨은 담하고 연애하면서 담을 타고 오른다.
셋째, 시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많이 쓰지 말고, 많이 생각하지 말고, 제발 많이 읽어라. 시집을 백 권 읽은 사람, 열 권 읽은 사람,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 중에 시를 가장 잘 쓸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초보자가 쓴 시의 성패는 분명히 독서량에 비례한다. 여기에서 시를 많이 읽는다는 것은 쓰기의 준비 단계이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시를 접하지 않고서는 좋은 시를 선별할 수 없으며, 좋은 시를 쓸 수도 없다.(좋은 시가 무엇인가 하는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자.)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는 그의 방대한 저서 <인정>에서 “문장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이 쌓여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읽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삼대 이상 의원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병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문장 또한 그렇다. 반드시 오래도록 노력한 다음에야 능숙하게 글을 지을 수 있다. 글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세상을 다스리는 경학(經學)을 읽어서, 문장의 기초와 뿌리를 단단하게 세워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역사 관련 서적들을 두루 공부하여 나라와 개인이 흥망성쇠하는 근원을 알아야 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실용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경제서를 즐겨 읽어야 한다. …내가 말한 대로 해 본 다음에 안개 낀 아침이나 달 밝은 밤, 짙은 나무 그늘과 가랑비 내리는 때를 만나면 문득 감흥이 일어나 시를 읊게 되고, 문장의 구상이 떠올라 글이 써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 자연의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생동감 있는 글을 짓는 문장가의 창작 활동이다.”
나는 시창작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을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200권쯤 된다. 목록을 받아든 학생들의 입이 딱 벌어진다. ‘어느 세월에?’ 하는 표정들이다. 내가 강의하는 건물에는 국악과가 있어 가야금이나 거문고 따위를 들고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라고 설명한다. 시집은 악기처럼 비싸지 않고, 무겁지 않고, 고장이 나지도 않는다. 시집을 읽기 위해서는 연주 연습을 하듯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가방에서 잠깐 꺼내 읽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는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시를 만나면 노트에 적어두었다. 그렇게 필사한 시가 대학노트 세 권에 가득하였다. 지금도 문예지를 읽다가 좋은 시를 만나면 반드시 따로 옮겨 적어 둔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필사를 권한다. 아니, 거의 강요한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이면 수백 편의 시가 적힌 자기만의 시집이 오롯이 남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다양한 시를 읽는 것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과 같다. 나는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내가 요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거기에 들어간 재료와 음식의 빛깔과 요리방법에 대해 꼼꼼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 번 먹어본 특이한 음식은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훌륭한 관찰의 소재가 되고, 그 기억은 또한 멋진 시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법이다. 곧 맛있는 시를 많이 음미해본 사람이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막상 주위에 시 한 편도 시집 한 권도 옆에 없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때는 귀를 열고 들으면 된다. 세상의 여러 소리를 듣는 행위도 책을 읽는 행위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기형도는 어릴 적에 열무를 팔러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새어드는 빗소리를 들었다. 황동규는 <풍장 27>(아래 시)에서 빗소리를 듣기 위해 세상 뜰 때 귀만 두고 가겠다고 한다. 손과 발과 입과 눈은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오직 귀만 두고 가는 이 마음 역시 세상을 귀로 읽으려는 귀한 자세다.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 시는 몰입 끝에 찾아오는 ‘운명의 조타수’
짧은 글 한편도 단편소설만큼 공력 집중해야
못쓴다고 한탄하는 것은 게으름 인정하는 것
노력하지 않으면 눈부신 천성도 망각 속으로
2. 재능 믿지 말고 열정을 믿어라
1970년대만 해도 아이들이 읽을 만한 잡지가 흔하지 않았다. 시골 초등학교 도서실로 다달이 오던 <어깨동무>는 몇 해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도서실에서 책을 정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동무>가 든 봉투를 처음 개봉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정말 한 줄도 빼지 않고 읽었다. 집으로 잡지를 가져가서 읽는 날도 있었다. 물론 도서실의 ‘권력’을 이용한 불법대출이었다. 우리 집 건너편 방앗간 할머니는 혼자 살았는데, 내가 슬픈 이야기를 읽어주는 걸 좋아하셨다. 물레를 돌리며 명주실을 뽑는 할머니 옆에서 글을 읽어주면 할머니는 자주 슬피 우셨다. 그 덕분에 나는 누에고치 속의 번데기를 얻어먹거나 가끔 십원짜리 동전을 두어 개 얻을 수 있었다.
책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가 가장 하기 싫은 공부는 글쓰기였다. 독후감을 쓰기 싫어 책을 읽다가 덮어버린 적도 많았다. 매일 일기장 검사를 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숙제로 쓴 일기를 5학년 여름에는 날짜만 바꿔 제출하기도 했다. 해마다 학교에서 백일장이 열리면 나는 시(운문)를 썼다. 시가 좋아서가 아니라 길이가 짧기 때문에 빨리 쓰고 뛰어놀기 위한 속셈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지에 처음으로 투고한 시는 심혈을 기울여 썼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실리지 않았다. 나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함부로 단정 짓고 말았다. 좋은 시를 고르는 선생님의 안목에 문제가 있다고! 그리하여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써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장래에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 교지에 적어도 시 한 편만은 꼭 실리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 삶의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다시 그리면서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게 된 것은 30여 년 전, 거기서, 그렇게 비롯되었다.
천재 시인이 과연 있을까? 내가 보기에 천부적으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시인이란 애초부터 없다. 어떤 시인의 재능에 대한 찬사는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찬사이지 인간으로서의 천재성을 인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천재 시인이라는 말이 랭보의 이름 앞에 붙는 것은 십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경악할 만한 상상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이상의 앞에 이 말이 붙는 것은 그의 파격적인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천상병 시인을 가리켜 ‘천상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전에 보인 낭만적이고도 기구한 행적에다 그의 이름에서 연상된 말놀이를 결합한 결과이다.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 회의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다.
데이비드 베일스와 테드 올랜드는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서 예술가가 “자신이 가진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쓸모없고 흔한 에너지 소모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즉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눈부신 천성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볼 것은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배워 나가며 발전한다”는 대목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 혹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그 창작물을 통해 변화·발전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독자들을 감응시킬 뿐만 아니라 창작자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 좋은 시든 나쁜 시든 ‘이미’ 창작한 한 편의 시에는 ‘앞으로’ 창작할 시의 방향과 원리가 다 들어 있다.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시인이 살아가면서 지향해야 할 삶의 지침까지 들어 있기 마련이다.
시인이라는 존재의 엄숙성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시라는 양식이 원래부터 엄숙하고 고결한 품격을 타고난 것은 아니며, 그리 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예술 창작의 결과물인 시는 하나의 창조적 생명으로서 시인을 간섭하고, 가르치고, 지시하고, 격려하고, 고무하고, 나아가게 하고, 물러서게도 한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순간,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 무서운 진리 앞에서 시인은 엄숙해질 수밖에 없다.
시인으로서 타고난 재능에 기대어 시를 기다리지 마라. 그리고 재능이 없다고 펜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지도 마라. 그렇게 하면 시는 절대로 운명의 조타수가 되어주지 않는다. 시인 역시 시의 길을 여는 조타수가 되려면 선천적인 재능보다 자신의 열정을 믿어야 한다. 일찍이 이광웅 시인은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고 했다. 열정의 노예가 되어 열정에 복무할 때 우리는 그 열정에 대한 신뢰를 가까스로 재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중에 ‘시는 감성으로 쓰고, 소설은 노력으로 쓴다’는 허무맹랑한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 감성이 무뎌진다’는 출처불명의 유언비어도 떠돈다.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고 선량한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이려는 헛소리들이다. 시를 쓰는 당신은 이런 말들에 귀가 어두워져 펜 끝을 흐리지 마라.
아무리 짧은 시 한 편을 쓰더라도 단편소설 한 편을 쓰는 것에 버금가는 시간을 투자하고, 자료를 취재하고, 공력을 집중시켜라. 감성이 무뎌졌다 싶으면 나이를 원망하지 말고, 부단히 감성을 훈련하지 않는 자신의 나태를 탓하라. 청년에게는 청년의 감성이 있고, 노년에게는 노년의 감성이 있는 법이다. 감성이란 또 여성의 전유물도 아니어서 남성적인 감성도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열정을 품고 감성을 연습하고, 훈련하라.
생명이 요동치는 계절이면/ 넌/ 하나씩 肉身(육신)의 향기를 벗는다.// 온갖 색깔을/ 고이 펼쳐둔 뒤란으로/ 물빛 숨소리 한 자락 떨어져 내릴 때/ 물관부에서 차오르는 긴 몸살의 숨결/ 저리도 견딜 수 없이 안타까운 떨림이여.// 허덕이는 목숨의 한 끝에서/ 이웃의 웃음을 불러일으켜/ 줄지어 우리의 사랑이 흐르는/ 五線(오선)의 개울./ 그곳을 건너는 和音(화음)을 뿜으며/ 꽃잎 빗장이 하나둘/ 풀리는 소리들./ 햇볕은 일제히/ 꽃술을 밝게 흔들고.// 별무늬같이 어지러운 꽃이여.// 꽃대궁 앓는 목숨의 꽃이여.// 이웃들의 더운 영혼 위에/ 목청을 가꾸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개화>)
고등학교 때 쓴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십대 후반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기엔 시어에 좀 징글맞은 구석이 없지 않고, 완벽한 시도 아니다. 꽃잎이 막 열리는 순간을 그리기 위해 그 당시에는 말의 선택에 꽤 고심을 했던 것 같다. ‘육신·색깔·물빛·숨소리·물관부·몸살·숨결·떨림·빗장·목청’과 같은 명사들, ‘요동치는·벗는다·차오르는·허덕이는·불러일으켜·뿜으며·풀리며·흔들고’와 같은 용언들의 매혹에 빠져 미궁을 헤매듯 어지럽던 기억이 난다.
하나의 제재를 택한 뒤에 그것을 집중적으로 궁리하는 동안 감성은 자연스럽게 훈련이 된다. 시어와 제목의 유기적 관계를 따져보고, 시어와 시어 사이의 충돌을 살피는 일, 시적인 대상과 자아와의 거리를 조정하는 일들이 모두 감성의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뛰어난 요리사는 음식의 재료와 재료의 어울림에 예민하게 주목하는 자임을 잊지 말자. 특정한 제재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중국의 시인 아이칭(艾靑)이 그의 <시론>에서 한 말은 음미할 만하다.
제재를 완전히 장악해야 비로소 예술세계의 통치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무릇 당신이 눈동자로 본 것, 귀로 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당신의 사상체계 속에 잘 짜 두어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명령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감각과 사유가 한 제재로부터 습격을 당할 때, 한바탕의 격투를 치르게 하라. 그 제재가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게 하라.”
이 싸움의 과정은 몰입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몰입은 글쓰기의 중요한 바탕이면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온전하게 몰입할 때 온다. 시에 투자하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몰입하는 시간의 깊이가 중요하다. 단 한 시간이라도 시에 집중적으로 몰입해 보라. 당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정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몰입을 열정의 이음동의어라고 부르면 어떨까?
*** 뒷산에서 ‘똥’을 누다 시 한수 얻다
시는 ‘대변’을 ‘똥’이라고 말하는 양식
영감과 시상 떠오르는 순간 곳곳에 있어
언제 어디서든 받아쓸 자세가 돼야
3. 시마(詩魔)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똥’이라는 말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똥’이 삶의 실체적 진실이라면 ‘대변’은 가식의 언어일 뿐이다. 시는 ‘대변’을 ‘똥’이라고 말하는 양식이다. 그리하여 시는 ‘똥’이라는 말에 녹아 있는 부끄러움까지 독자에게 되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 슬그머니 미소를 띤다.
모름지기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똥’에 유의해야 한다. 절대로 ‘똥’을 무시하거나 멀리해서는 안 되며, ‘똥’이라는 말만 듣고 코를 싸쥐어서도 안 된다. 똥을 눌 시간을 겸허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똥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똥하고 친해져야 한다. 똥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다. (똥을 괄시했다가는 얼굴에 똥칠당하기 쉽다.)
지난해 여름 나는 지리산 실상사 근처에서 한 보름 지낸 적이 있다. 시집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번잡한 세상의 일들을 뒤로 밀쳐두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다. 내가 묵은 곳은 산 중턱의 외딴집이었다. 그 집 뒤로는 인가가 한 채도 없었다. 지리산의 한 능선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방안의 가재도구라고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휴지통 하나가 전부였다. 인터넷이나 전화도 없었다. 방 한 칸이 집 한 채인 집이었다.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서 밤에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마당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세수를 할 수 있었다. 그 외딴집은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집이었다.
밤늦게 글을 쓰다 보면 늦잠을 자기 마련이어서 아침밥은 걸렀고, 점심과 저녁은 실상사 공양간에서 얻어먹었다. 그렇게 하루 두 끼를 먹고 이튿날 눈을 뜨면 어김없이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화장실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게 귀찮아서 매일 뒷산에서 ‘큰일’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절밥을 먹었으니 땅에게 똥을 돌려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삽 한 자루와 휴지만 달랑 들고 숲 속으로 가면 곳곳에 내 똥을 받아줄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산에서 똥을 누는 사람이 되었다. 아, 나는 그 아침의 오묘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것은 똥 혼자서만 풍기는 냄새가 아니었다. 흙과 똥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기막힌 화음이었다. 도시의 화장실은 똥을 감추고 그 냄새를 지워버리려고 애를 쓰지만, 흙은 숨기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양변기에 눈 죽은 똥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흙속에 눈 똥은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흙속에서 똥은 오롯이 살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덕분에 시 한 편을 얻었다.
뒷산에 들어가 삽으로 구덩이를 팠다 한 뼘이다// 쭈그리고 앉아 한 뼘 안에 똥을 누고 비밀의 문을 마개로 잠그듯 흙 한 삽을 덮었다 말 많이 하는 것보다 입 다물고 사는 게 좋겠다// 그리하여 감쪽같이 똥은 사라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왔다// ─똥은 무엇하고 지내나?// 하루 내내 똥이 궁금해// 생각을 한 뼘 늘였다가 줄였다가 나는 사라진 똥이 궁금해 생각의 구덩이를 한 뼘 팠다가 덮었다가 했다
제목은 <사라진 똥>이다. 나는 도라지꽃 앞에서, 싸리꽃 앞에서, 칡꽃 앞에서, 애기원추리꽃 앞에서, 이름도 모를 버섯들 앞에서 매일 똥을 눴다. 그러고는 삽으로 꼭꼭 덮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절밥을 먹고 똥을 땅에게 돌려주었더니 땅은 또 많은 것을 내게 선물하였다. 매미소리, 새소리, 계곡 물소리, 소나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아침마다 나를 응원하는 듯하였다. 실상사 약사전의 부처님께 나도 무엇인가를 바치고 싶었다. 그리하여 <공양>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이 더 씌어졌다.
싸리꽃을 애무하는 山(산)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향기들을 ‘일곱 근’ ‘육십 평’ ‘두 치 반’ ‘칠만 구천 발’ ‘서른 되’로 계량화한 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2007년 7월부터 정부에서는 표준도량형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여러 단위의 혼용에서 오는 국가적 손실을 없애고 그 편리성과 효용을 국민이 누리게 한다는 취지가 그것이다. 이른바 실용적인 필요성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표준도량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는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시는 실용과 경제의 반대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무엇이다. 때로는 어슬렁거림이고, 때로는 삐딱함이고, 때로는 게으름이고, 때로는 어영부영이고, 때로는 하릴없음인 것이다. 시는 실용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와는 다른 시적 가치를 요구한다. 그것은 세상의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시작(詩作)이라고 하거나 시적 순간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시적인 순간은 쉽게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영감(靈感)이나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시적 순간은 의외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초보자는 시적 순간이 수시로 입질을 하는데도 그것을 낚아채는 때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그렇다. 시인이란, 우주가 불러주는 노래를 받아쓰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메모지와 펜을 챙기고 받아쓸 준비를 하라. 잠들기 5분 전쯤 기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아, 내일 아침에 꼭 그것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잠들어버리지 마라. 영감은 받아 적어두지 않으면 아침까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해서 놓친 시가 수십 편이나 된다. 아쉬워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아예 메모지와 펜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 시마(詩魔)가 나를 괴롭힌다 싶으면 화장실에도 놓아둔다. 속주머니에도 넣어둔다. 당신도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 익숙하면 의심하라…낯선 진실 드러난다
상투성은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시의 적’
‘토끼는 ()뛰어간다’ 어떤 말을 넣을 것인가
늘 보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 찾아야
4.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의 결별
만약에 당신이 ‘가을’을 소재로 한 편의 시를 쓴다고 치자. 당신의 머릿속에 당장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가을의 목록은 십중팔구 ‘낙엽·코스모스·귀뚜라미·단풍잎·하늘·황금들녘·허수아비·추석’과 같은 말들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당신의 상상력을 만나기 위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그러다가 낙엽은 ‘떨어진다’는 말로 연결되고, 코스모스는 ‘한들한들’이라는 의태어를 만나고, 귀뚜라미는 ‘귀뚤귀뚤’이라는 의성어와 결합하며, 단풍잎은 ‘빨갛게’ 물이 들 것이며, 하늘은 ‘푸른 물감을 뿌리다’는 문장과 조우하며, 황금들녘은 풍요의 이미지를 데리고 올 것이며, 허수아비는 반드시 ‘참새’를 불러들이고, 추석은 ‘보름달’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게 한심한 조합으로 시의 틀을 짜려고 한다면 그 순간, 그때부터 당신의 시는 망했다고 보면 된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 당신의 시는 상투성의 그물에 스스로 갇힌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상투성은 시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대상을 피상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독버섯과 같다. 겉은 멀쩡한데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독을 품고 있는 것이다.
“기계적인 우리들의 삶 속에 파묻혀 있는 세계를 관찰하고 느끼고 그것을 언어로 드러내는 일”을 오규원은 <현대시작법>에서 ‘미적 인식’이라는 말로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재라고 하더라도 시인의 미적 인식에 의해 재발견되지 않으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으며 죽은 인식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죽은 인식은 죽은 언어를 불러온다. 시인의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는 죽은 언어를 구별하여 과감히 버리고 살아 있는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연탄 이야기를 잠시 하자.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 앞에 슬그머니 ‘연탄시인’이라는 말이 붙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나무 시인’이나 ‘풀잎 시인’이 아니고 하고많은 소재 중에 왜 하필이면 연탄이란 말인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마도 <너에게 묻는다>를 비롯해서 연탄을 소재로 몇 편의 시를 쓴 탓일 게다. 애초에 나는 연탄을 소재로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희생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다. 나는 연탄을 내세워 ‘가을’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아니, ‘가을’을 쓰려고(‘가을’을 내 방식으로 인식하려고) 연탄을 끌어들였다는 말이 맞겠다. 옛날에는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꺾일 때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연탄이었다. 연탄을 실은 트럭과 리어카가 거리와 골목을 누비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가을이었다.
어릴 적에 내 자취방 부엌에는 늘 연탄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내가 처음 배운 것은 자취방의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제때 갈아주는 일이었다. 연탄의 붉고 푸른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구들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나는 자주 바라보았다. 그 불꽃으로 밥과 국과 라면을 끓였고(몇 번이나 라면 냄비를 뒤엎었고), 양말과 운동화를 말렸고, 양은찜통에다 밤새 물을 데워 아침에 머리를 감았다.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연탄을 갈았고, 연탄구멍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잠이 가득 찬 눈을 비볐고, 그리고 연탄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몇 초 동안은 숨을 참아야 했다.
언덕 위에 있던 그 자취방을 나와 학교로 가려면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 했다. 겨울이면 눈 녹은 물이 비탈길을 빙판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아침에는 누군가 어김없이 비탈길에 연탄재를 잘게 부수어 뿌려놓곤 했다. 그 고마운 분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분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연탄은 내게 두 가지의 의미를 한꺼번에 선물했다. 하나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인식하는 소재로, 또 하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상징으로 나에게 온 것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이미지는 오히려 연탄보다 ‘촛불’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연탄보다 더 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상투성에 굴복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석정을 비롯해 이미 많은 시인들이 촛불의 자기희생을 노래했다. 지금 와서 그것을 굳이 시라는 형식에 담아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상투적인 동어반복만큼 비시적인 것도 없는 것이다(단 2008년 6월, 지금, 이 땅의 광장에서 켜지는 수많은 촛불은 또 다른 의미규정과 표현방식이 필요하다).
초등학생들에게 동시를 가르치는 교실에서도 문제는 수없이 발견된다. 2학년 1학기 <쓰기> 교과서에는 말의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반복되는 말이나 흉내 내는 말을 써보라고 하는 단원이 있다. 당신 같으면 다음 괄호 안에 어떤 말을 넣을 것인가?
‘토끼는 ( )뛰어간다.’
물론 정답은 ‘깡충깡충’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중에 과연 토끼가 깡충깡충 산을 뛰어오르는 모습을 본 아이가 몇이나 될까. 아이들은 대부분 동물원이나 토끼장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토끼를 본 게 전부일 것이다. 이런 기계적인 동시교육은 ‘시냇물은 졸졸졸’ ‘새싹은 파릇파릇’ ‘흰 눈은 소복소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시라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표현의 경직성은 사고의 경직성으로 옮아간다.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머리를 딱딱하게 만드는 이런 나쁜 동시 교육을 이제는 한시바삐 집어치워야 한다.
“미(美)는 언제나 엉뚱하다”고 한 보들레르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이 다다르고자 하는 미적 인식을 위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창작의 신조로 삼으라. 시인 이문재는 문학청년 시절 <문학개론> 첫 시간에 노교수가 “문학은 인생이다”라는 문장을 칠판에 쓰는 걸 보고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스무 살 봄날, 나에게 문학은 인생 그 이상이어야 했다. 문학은 인생의 멱살을 휘어잡거나, 인생과 무관한 강렬한 빛이거나 독약 같은 것이어야 했다. 나는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류시화와 어울리며, 고전음악 감상실을 찾았고, 대학로에 죽쳤다. 캠퍼스와 강의는 고루하고 지루했다. 우리에게는 파격이 필요했다. 고정관념과 선입견,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는 파천황이 절실했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고, 본관 앞에서 막걸리에 도시락을 말아먹었다. 글씨를 왼손으로 썼고, 담뱃갑을 거꾸로 뜯었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문학청년의 치기로 볼 수만은 없다. ‘시적인 것’을 찾으려는 탐색의 정신은 혼돈과 암흑을 깨뜨리는 파천황의 정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당신이 늘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소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기미를 포착하고 파악하는 습관을 길러라. 사물을 반듯하게 보지 말고 거꾸로 보라. 세상을 걸어 다니면서 보지 말고 때로는 물구나무를 서서 바라보라. 지금부터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을 의심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을 선언하라.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 순간도 미적 인식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이지(李贄, 1527~1602)는 ‘동심설’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동심이야말로 ‘시적인 것’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 모습이다. 그런데 동심은 왜 느닷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도리(道理)와 견문(見聞)이 들어와 내면에서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서 동심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더욱 쌓이게 되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날마다 더 그 폭이 넓어져서, 이에 아름다운 이름이 좋아할 만한 것임을 알게 되어 애써 이름을 드날리고자 하여 동심을 잃게 되고, 아름답지 않은 이름이 추함을 알아 애써 이를 덮어 가리려고 하여 또 동심을 잃게 된다.”
여기에서 도리와 견문은 고정관념, 구태의연한 사고, 인습적 가치관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학문과 사상의 영역뿐만 아니라 시의 영역에서도 진정성은 동심을 회복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상투적인 눈,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 진부한 언어로는 진정성의 끄트머리도 붙잡을 수가 없다. 새로운 것과 참된 것은 어린아이의 눈 속에 있다.
*** 펜끝에 힘을 빼라…생각의 힘 살아난다
5.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 것
무엇을 쓸 것인가?
한 미국 작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마에 피땀이 맺힐 때까지 그저 텅 빈 종이를 바라보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파울러)라고. 말이 쉽지 그건 또 얼마나 고역일 것인가. 그렇게 했는데도 단 한 줄의 글도 써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이 말은 어떤 소재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글을 쓰려면 집중적인 몰입의 자세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이다.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글을 구상하는 순간부터 퇴고를 완료할 때까지 당신을 따라다닌다. 그 ‘무엇(내용)’과 ‘어떻게(형식)’ 때문에 쩔쩔매는 아이들을 위해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이렇게 일갈하셨다. “똥 누듯이 쓰라”고. 괜히 어깨와 펜 끝에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쓰라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찾고, 예쁘게 꾸미려는 마음을 없애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뜻은 이해하지만, 그러나 똥을 누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일상서 소재 찾고 꾸밈 없어야 좋은 글
릴케·두보보다 우리 시인 먼저 읽어야
그러면 다시 묻자. 도대체 무엇을 쓸 것인가?
첫째,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써라.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책을 읽어서 알게 된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경험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직접적인 경험만큼 생생하지는 않다. 남의 입을 통해 빠져나온 말을 받아 적다 보면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할 우려가 있고, 책으로 얻는 지식과 지혜를 말로 옮겨 적다 보면 현학이나 지적 허영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시인 김용택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큼만 시를 쓴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면서, ‘너희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아니까, 나는 그것을 쓰겠다’는 그만의 독특한 창작 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적었더니 시가 되더라”는 말도 했다. 이때의 ‘어머니의 말씀’은 바로 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이라는 의미다.
둘째,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써라. 시인 이정록의 말을 잠시 경청해 보자.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 보라고 한다.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대,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그는 ‘문지방 삼천리’라는 말로 기발하게 압축했다. 삼천리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다 둘러보지 못한다. 애써 둘러볼 필요도 없다. 문지방 안에 삼천리가 다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시를 찾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한마디 더 귀띔한다. “오래 들여다보면 모두 시가 된다.” 역시 이정록의 어록이다. 기억해 두자.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시를 쓰려면 당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젊은 우리나라 시인의 시부터 읽어라. 젊은 시인의 시는 교과서요, 늙은 시인의 시는 참고서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는 한 끼의 밥이지만, 외국 시인들의 시는 건강보조식품이다. 제발 릴케와 보들레르와 엘리어트를 읽었다고 거들먹거리지 말라. 두보와 이백을 앞세우지 말라. 볼썽사납다. 그들 대가의 시집은 두고두고 천천히, 읽어라.
셋째,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써라.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쓰지 말고, 낮은 곳에서 돌아앉아 우는 것에 대해 써라. 시는 절대로 ‘초월한 자의 향기’가 아니다. ‘고귀한 사랑’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 아니다. ‘고행을 이겨낸 구도자의 경지’가 아니다. 시는 초월하지 못한 인간의 발가락에서 나는 냄새고, 지저분한 사랑이며, 인간과 자연의 불화이며, 한 시간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번 돈 3천원이다.
시를 쓰려거든 두꺼운 문학이론서를 독파하지 말라. 창작보다 고매한 철학적 사유로 무장하는 게 우선이라고 여기지 말라. 이론이나 세계관이 시를 낳는 게 아니다. 당신의 시가 당신의 이론과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믿어라. “사유가 먼저 있고, 그 도달한 사유에 맞춰 거꾸로 체험을 구성할 경우 작품은 파탄을 면치 못한다. 사유로부터 경험이 도출되는 것은 마치 몸에 옷을 맞추지 않고 옷에 몸을 맞춘 것처럼 어색하다. 몸에 옷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규범이듯, 경험에 사유가 뒤쫓아 가 그 경험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의 원리이다.”(김상욱의 <다시 쓰는 문학에세이>)
넷째, 화려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을 써라. 나의 경험 중에 행복했던 시간들이 남에게도 반드시 행복한 시간으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행복과 충족은 남의 불행과 결핍의 증거임을 잊지 말라. 장미와 백합의 우아한 향기에 취하지 말고, 저 들판의 민들레와 제비꽃의 무취에 취하라. 금메달을 목에 건 승리자의 영광보다는 꼴찌로 들어오는 선수의 실패를 경배하라. 성형수술 한 처녀의 얼굴을 경멸하고 주근깨로 뒤덮인 소녀의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라.
시는 ‘고귀한 사랑’ 아냐…하찮은 것 써야
나만의 경험 살려 어떻게 쓸 것인지가 관건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졸시 <애기똥풀>)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적 경험은 나의 경험의 일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 중에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시적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하여 쓴다. 하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해 본다고 많은 시적 경험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그 수많은 경험들이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를 해석하는 능력, 즉 상상력의 도움 없이 어떤 소재에 매달리는 것은 소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라. 시에서 소재주의는 시단의 특정한 경향을 답습하거나 이미 규범화한 유파의 문법을 비판 없이 추종할 때, 그리고 글쓰기의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앞설 때 생겨난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시가 생겨나는 지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곧잘 소재주의에 빠진다. 그러므로 ‘무엇’을 쓰려고 1시간을 끙끙댈 게 아니라 단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칭(艾靑)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쓰는가에 있지 않고, 당신이 어떻게 쓸 것이며, 어떻게 이 세계를 볼 것이며, 어떠한 각도에서 세계를 볼 것이며, 당신이 어떠한 태도로 이 세계를 포용할 것인가에 있다.”
여기 시의 소재로서 한 알의 사과가 있다. 당신에게 이 한 알의 사과에 대해 시를 쓰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적어도 다음에 제시하는 열 가지 정도의 행동을 수행하거나 사유를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시의 첫 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1) 사과를 오래 바라보는 일
2) 사과의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
3) 사과를 담은 접시를 함께 바라보는 일
4) 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보는 일
5)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는 일
6) 사과에 스민 햇볕을 상상하는 일
7) 사과를 기르고 딴 사람과 과수원을 생각하는 일
8) 사과가 내 앞에 오기까지의 길을 되짚어 보는 일
9) 사과를 비롯한 모든 열매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일
10) 사과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일
*** 베끼고 또 베껴라…시가 날아온다
필사는 가장 좋은 자기학습법
사랑하면 서로를 닮고 싶어져
젊은 날 백석 ‘훔치며’ 꿈 키워
6.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할 것
언젠가 “내 시의 사부는 백석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또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다. 오로지 그의 시를 ‘베끼고’ 싶었다”고 뻔뻔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데 백석은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으며, 당신의 시를 베껴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백석에 대한 내 사랑은 짝사랑이라 할 수 있다. 백석, 그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의 시를 얼마나 베끼려고 아등바등했는지, 왜 아직도 그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지 말해보려고 한다.
백석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1980년, 대학 1학년 때였다. 지금은 작고하신 시인 박항식 선생님의 저서 <수사학>에 <모닥불>이 인용되어 있었다. ‘갓신창’ ‘개니빠디’ ‘너울쪽’ 같은 몇몇 시어가 좀 낯설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백석이라는 낯선 시인의 이 시 한 편은 스무 살 문학청년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그 까닭을 지금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내가 학습한 시인들과는 뭔가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백석은 김소월도 한용운도 이상도 윤동주도 아니었다. 청록파도 서정주도 김춘수도 아니었다. 나는 캄캄해졌다. 그만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백석의 시에 반해 버렸다고 은사님께 말씀드렸더니, 또 다른 시들을 보여주셨다. 나는 백석의 새로운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한 편 두 편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묘한 흥분과 감격에 휩싸여 손끝은 떨리고 이마는 뜨거워졌다.(1988년 정부의 공식적인 해금 조치 이전에는 내놓고 그의 시를 읽을 수 있는 독서의 자유가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필사했다. 그런 필사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게 백석은 그저 하고많은 시인 중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그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그의 시를 필사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그건 짝사랑이었지만 행복했다. 나는 그의 숨소리를 들었고, 옷깃을 만졌으며, 맹세했고, 또 질투했다. 사랑하면 상대를 닮고 싶어지는 법이다.
소설가 신경숙은 대학 시절 방학 때 소설을 읽다가 필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볼 때와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나는 이 길로 가리라. 필사를 하는 동안의 그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각인시켜준 독특한 체험이었다.”(신경숙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필사는 참 좋은 자기학습법이다. 시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어쩌다 눈에 번쩍 띄는 시를 한 편 만났을 때, 짝사랑하고 싶은 시인이 생겼을 때, 당신은 꼭 필사하는 일을 주저하지 마라. 그러면 시집이라는 알 속에 갇혀 있던 시가 날개를 달고 당신의 가슴 한쪽으로 날아올 것이다.
1987년 선배 시인 이광웅이 ‘오송회’ 사건으로 복역하다가 출옥한 뒤에 나에게 또 백석의 시를 보여주었다. 낡은 대학노트에 아주 정갈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필사한 시였다.(이광웅 시인은 1992년에 세상을 떴다. 나는 이 필사본을 돌려드리지 못했다. 지금도 내 서랍에 보관하고 있다.) 그 무렵 창작과비평사에서 이동순 시인이 엮은 <백석시전집>이 나왔다. 이로써 세상에 가까스로 백석 시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나는 1989년에 낸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백석에게서 훔쳤다. <모닥불>이 그것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백석의 호흡을 차용한 시들을 여러 편 쓰기 시작했다. 현실과 상상 사이에 길을 만들어 <백석 시인의 마을에 가서>라는 시도 썼다.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는 시인을 만나 메밀국수를 한 사발 먹었고, 폭설이 쏟아지는 시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구들장이 뜨거운 집이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1994년에 나온 네 번째 시집의 제목 <외롭고 높고 쓸쓸한> 역시 백석표 제목이다. 그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누구나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다’는 말은 쉽게 할 줄 안다. 그러나 ‘외롭고’와 ‘쓸쓸하다’ 사이에 ‘높고’라는 말을 갖다 놓을 줄 아는 시인이 백석이다. 이 ‘높고’는 양쪽 형용사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그 구차함을 일거에 해소하고 시 전체의 품격을 드높이는 구실을 한다. 베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높고’인 것이다!
그 이후에 낸 여러 시집에서도 백석을 짝사랑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음을 숨기지 않겠다. 애초부터 의도하고 흉내를 낸 것이 있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그에게 스며든 것도 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졸시 <사랑> 앞부분). 감나무에서 쉬지 않고 매미가 울었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마루에 누워 부채를 부치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메모한 구절이다. 나중에 가만 생각해보니 이 시구 역시 백석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앞부분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사랑하기 때문에 푹푹 눈이 내린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 분명히 문장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진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말자. 그건 30년대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메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산숙(山宿)>
1938년 <조광>에 발표한 시다. 나는 이 시 한 편으로 30년대 산골의 전형적인 풍경과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여기에서 아주 인상적인 것은 ‘목침’이다. 이 오래된 목침에는 새까만 때가 올라 있다. 화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백석의 매력이 숨어 있다. 그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라는 서술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밋밋하고 시의 산문적 서술에 기여하는 말이 ‘생각한다’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아프다.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이 누구이겠는가? 목침에 때를 올린 사람들은 목침을 베고 잔 뒤에 떠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산골의 광산촌을 떠돌거나 만주 등지로 길을 떠나던 30년대 후반의 우리 민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의 눈은 때 묻은 목침 하나를 통해 대다수 우리 민족 구성원들의 현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에서도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시인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시인이다.
나는 그의 시에서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것도 좋아하고, 수많은 음식을 나에게 맛보여주는 것도 좋아하고, 연인에게 산골로 가서 살자고 하면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호기를 부리는 것도 좋아한다.
짝사랑의 햇수가 삼십년 가까이 된다. 지겨울 때도 되었건만 백석이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도꼬마리 씨앗 같다. 아니, 내가 백석의 몸에 붙은 도꼬마리 씨앗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도 시가 잘되지 않을 때, 해괴하기 짝이 없는 시들이 나를 괴롭힐 때, 백석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사랑하면 길이 보인다.
** 무엇을 위해서도, 누구를 위해서도 쓰지 말라
7.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죽여라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연애시절에 애인한테 몇 번쯤 시를 써서 바쳤는지요?”
내 대답은 한결같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내 질문한 사람의 얼굴에는 실망의 그림자가 스쳐간다. 조금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시를 연애의 수단이나 사랑을 고백하는 도구쯤으로 여기면 그럴 만도 하다. 젊은 날에는 결혼축시를 써달라는 주문이 쇄도할 때도 있었다. 그렇고 그런, 입에 발린 주례사처럼 매번 쓸 수가 없어서 나는 늘 쩔쩔맸다.
대학 다닐 때 처음 축시라는 것을 쓴 적이 있는데, 첫걸음부터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어렵게 결혼에 성공한 선배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새우젓장수가 되더라도 어떻게든 잘 살 거라고 말이다. 나는 새우젓장수가 되겠다는 신랑의 그 말에 힌트를 얻어 원고지에 축시를 썼다. 그런데 식장에서 시를 읽어내려 가는 동안 신랑과 신부가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양가 부모님들까지 손수건을 꺼내드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급기야 결혼식장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사랑과 행복의 언어가 가득해야 할 남의 결혼식장을 거친 인생의 출정식처럼 비통하고 비장하게 만든 것이다. 그 죄는 돌이키지 못할 것이었으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로 이거야! 혼주와 하객들이 흘린 눈물은 내 시에 대한 최고의 찬사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다. 아직도 그 선배는 그때 쓴 축시를 액자에 담아 거실에 걸어두고 있다 한다.)
나한테 공으로 시집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고마워 나는 받자마자 서문을 반드시 읽는다. 한 권의 시집이 지향하는 가치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문 때문에 아예 시를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버리는 시집도 있다. 한 지붕 아래 함께 밥 먹는 배우자와 자식들을 향한 사랑을 서문에 여과 없이 드러내는 꼴이 안쓰러워서다.(전북지방의 말로 하면 식구들한테 야냥개 부리는 것 같아서다. 간살을 떤다는 뜻이다.)
종교·가족…일체 벗고 어깃장 놓아야
반대쪽 선 ‘불화의 순간’ 시는 태어나
가령 다음과 같은 시집 서문은 어떤가?
스무 살 가을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선 뜻밖에 오천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한 청춘의 막차표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 산다.
그때 다녀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 올린다.
이덕규의 첫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의 서문이다.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와 시인이 간직하고 있어야 할 태도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젊은 날의 방황,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 삶을 바라보는 순정하고 따스한 시선이 독자인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쯤은 되어야 한다.
시라는 형식, 혹은 시집이라는 형식 속에 가족을 끌고 들어와 챙기고 쓰다듬는 행위는 아무래도 비시적이다. 그런 사랑은 시집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법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라.”
중국의 고승 임제(臨濟)의 화두다. 무비 스님은 <임제록 강설>에서 ‘나 아닌 다른 경계에 동요하지 말라’는 말이고, ‘일체를 부정하고 벗어나라’는 말이며, ‘그 어떤 권위나 관념들로부터도 벗어나라. 인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에도 있지 말고 밖에도 있지 말고 중간에도 있지 말라’는 것이다.
일체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 깨달음에 이르듯 시로 접어드는 길도 그러한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는 절대자와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다. 시의 초보자일수록 ‘무엇을 위해서’ 쓰려고 한다. 또 ‘누구를 위해서’ 쓰려고 한다. 시가 천박해지는 순간이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쓰지 말고, 그 누구를 위해서도 쓰지 말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아내를 만나면 아내를 죽여라. 부처를 우러르면 불경을 읽으면서 절을 하면 될 것이요, 예수를 믿으면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를 하면 된다. 부모를 공경하면 지극히 효도를 다 하면 될 것이요, 아내를 사랑하면 한 번 더 껴안아주면 그만이다. 시에다가는 단 한 줄도 절대자의 말씀을 받아 적지 마라. 제발 부모의 자애로움을 칭송하지 말 것이며, 금실 좋은 아내와의 관계를 떠벌리지 마라.
그래도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시에다 쓰고 싶어 못 견디겠으면 어떻게 하나? 부처의 말씀을 관념의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실천할 줄 모르는 자들에 대해 써라. 예수를 팔아 제 잇속을 챙기는 자들을 크게 꾸짖는 시를 써라. 부모의 비겁함과 치부와 죄를 찾아 써라. 아내의 쩨쩨함과 실수와 과욕에 대해 써라.
일찍이 김수영은 시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 부분)
가족 끌고 들어와 챙기는 건 ‘비시적’
종교쪽 마음 가도 몸은 반대로 서야
시인은 이렇듯 절정에서 조금쯤 옆으로 비껴서 있어야 하는 자이다. 종교가 진리의 절정에 도달한 정신의 영역이라면 문학은 진리의 위기를 포착하는 풍향계여야 한다. 종교와 문학이 손쉽게 화해하면 둘 다 망한다. 시는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서도 안 되며,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시의 마음은 종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가되, 시의 몸은 종교가 가리키는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 서 있어야 한다. 그 어깃장, 그 버티는 안간힘, 그 불화의 순간에 가까스로, 시는 태어난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그해 가을>) 이성복은 아버지라는 우상을 무너뜨림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폭력적 질서를 전복하고자 했다. 최승자는 ‘Y를 위하여’라는 시에서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 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라고 노래하면서 이별의 아픔을 정면 돌파한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자기 갱신의 기회로 삼는 이러한 태도는 시의 끝부분에 가서 “오 개새끼/ 못 잊어!”라는 결구로 마무리된다. 얼마나 당찬 사랑인가.
“화장품 냄새/ 솔솔 풍기는/ 향기로운 엄마// 뭐든지 척척/ 도와주셔서/ 고마운 엄마// 바른길로 가라고/ 회초리로 찰싹 때리는/ 사랑하는 엄마// 엄마라는 말을/ 부르면/ 목이 메입니다.// 사랑한다고// 말도 떨려서/ 못합니다”(인터넷에서 구한 시,<엄마>)
“작은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배한권, <엄마의 런닝구>)
이 두 편의 동시를 비교해서 읽어보면 시에서 사랑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는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면 다 좋은 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글쎄, 하면서 고개를 흔들 것이다. 또 누군가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탤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 ‘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훈수를 할 것이다.
*** 놀고, 방치하고, 어슬렁거릴 수밖에
8.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이형기 시인은 부산으로 피난 온 조지훈을 만나 술을 한잔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팔팔하게 젊은 이형기는 대선배 조지훈에게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지훈은 “그것은 그저 방치해 둘 수밖에 없는 일이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지훈은 이 말을 전에 정지용한테서 들었다고 일러 주었다.
시를 방치하는 일, 그게 시를 잘 쓸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당신은 이 선문답 같은 짧은 일화를 유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시의 대가들뿐만 아니라 서양인도 비슷한 충고를 한다. 브렌다 유랜드는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에서 창의적인 글은 “오랫동안 비효율적이고 행복하게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의 효율성과 경제적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견해는 야만이거나 무책임한 언설일 뿐이다. 열심히 시간을 쪼개 공부해도 다다르지 못할 판에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라니!
당신은 오해하지 마라.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무조건 한가하고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 누구나 빈둥거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책을 보면서 머리를 쥐어뜯어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래도 시 한 줄 떠오르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본 적이 있는 사람, 이러다가 영영 시를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해본 적이 있는 사람, 그리하여 아예 시를 포기해버리고 싶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어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빈둥거릴 권리가 있다.
노는 시간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그래야 세상 뒤편 응시할 수 있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글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은 우리에게 힘이 된다. 그는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생산에 관해선 너무 많이 생각하고 소비에 대해선 너무 적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루의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파격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하루에 4시간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불성실하게 보내라는 말이 아니다. 그 나머지 시간에 지금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리도록 더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만약에 당신이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거든 술이 제대로 익기를 기다려라. 열흘이라도 백일이라도 기다려라. 좋은 술일수록 절대로 혼자 병마개를 따고 홀짝이며 마셔서는 안 된다. 함께 마실 친구가 저녁 어스름 무렵에 당신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에 초조하게 담장 바깥을 기웃거리지 마라. 당신은 그냥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며 걸어라.
나는 어슬렁거리며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어슬렁거려야 미세한 데 눈길을 줄 수 있고,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의 뒤편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아마 그도 어슬렁거리며 걷는 일로 하루를 다 소비하는 자일 것이다. 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되도록 많이 걸을 것을 주문한다. 한적한 오솔길이나 들길이 아니더라도 좋다. 재바르게 걷지 말고 ‘따복따복’ 걸어라. 모든 길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통로다.
그런데 아뿔싸! 학교 앞 거리에 어느 날 이런 현수막이 나붙은 것을 보고 말았다.
‘이유 없이 배회하는 자를 112에 신고합시다’
학교 부근 파출소에서 내건 이 현수막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이유 없는 걷기가 바로 배회인데, 그렇게 하다가는 우리 학생들이 모두 파출소에 붙잡혀가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한편으로는 웃음이 킥킥 터져 나왔다. 이 현수막의 폭력성은 빈둥거리는 일이야말로 시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거꾸로 입증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시가 오지 않으면 아등바등 시를 찾아 나서지 마라. 그냥 놀아라. 빈둥거려라. 시를 써서 무슨 이름을 얻겠다는 허영심을 버리고, 시가 실패할지 모른다고 초조해하지도 마라. 소나기가 내려도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치우러 허겁지겁 뛰어나가지 말 것이며, 개수대에 설거지 할 그릇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잊어버려라.
시를 쓰다가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해결하나 물어보지 마라.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슬럼프인 것이니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별도의 슬럼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시를 쓰고 싶거든 슬럼프마저 사랑하고 즐길 도리밖에 없다. 스스로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되거든 승용차를 버리고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이곳저곳 일없이 기웃거려라. 바다로 가거든 휴대전화를 물속에다 던져버려라. 저녁이 찾아오면 전등을 켜지 말고 어둠 속에서 어둠과 한 몸이 되어보라.
허영심 버리고 초조해 하지도 말기를
슬럼프마저 사랑하고 즐길 도리일 뿐
위선환 시인은 30년 간 시를 끊었다가 근래에 빛나는 시를 생산해내고 있는 분이다. 그 시간 동안 시를 ‘방치’한 것이다. 다시 시를 쓰면서 그는 주로 걸으면서 시를 생각했다고 한다. “시를 다시 쓰면서부터는 신문을 끊었고 티브이를 거의 끊었고 외출을 거의 끊었다. 내가 문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침저녁 아파트 옆 구릉 위로 난 산책로를 걷는 때로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시를 생각하고, 머릿속에다 집을 짓듯 시를 짓고, 지은 시를 외우며 돌아와서는 외워온 시를 입력하고, 한밤중에도 일어나 앉아 시를 고쳐 쓰곤 했었다.” (<현대시> 2008년 5월호)
빈둥거리며 걷다가 보면 운 좋게 이런 풍경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의 <묵화(墨畵)>다. 이 시의 앞 두 줄을 이렇게 바꾸어 읽어본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가 손을 얹었다.” 피동접미사 ‘히’를 빼고 나면 시의 호흡이 별안간 빨라진다. 할머니의 손길이 소 목덜미까지 가 닿는 시간도 빨라진다. 그렇게 되면 소를 쓰다듬는 할머니 손길의 경건함도 지긋한 사랑의 느낌도 사라지고 만다. 시가 여유를 놓치는 순간이다.
능동적인 생각과 행동만이 우대 받는 세상을 우리는 통과해왔다. 느림이나 게으름 따위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악성 종양처럼 알고 지냈다. 학교의 선생님도 집안의 부모도 우리에게 좀 더 빨리, 좀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야만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소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는 얼마나 낮은 곳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할머니가 얼마나 천천히 부엌에서 걸어 나왔는지, 얼마나 느리게 소한테 여물을 갖다 주었는지, 소가 여물을 우물거리는 동안 얼마나 그윽하게 소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다 안다. 그리고 소와 함께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도 충분히 안다.
저녁 무렵, 할머니에게 이미 소는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아니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들여다볼 줄 알고, 서로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 동병상련의 관계다. 비록 여섯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행간과 행간 사이에 여백은 무한하고, 시행은 끝났건만 마지막 쉼표는 소와 할머니의 상처와 그 둘 사이의 적막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적막을 사랑하라. 적막에 사로잡힌 적막의 포로가 되라. “풀숲에 호박이 눌러앉아 살다 간 자리같이/ 그 자리에 둥그렇게 모여든 물기같이/ 거기에다 제 얼굴을 가만히 대보는 낮달과도같이”(졸시 <적막> 전문)
적막 속에서 빈둥거리다가 보면 문득 소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소란 속으로 단번에 뛰어들지 말고, 가능하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라. 그러다보면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시인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주체하기 힘든 표현 욕구를 옛사람들은 ‘기양(技양)’이란 말로 표현했다. ‘양’이란 가려움증을 말한다. 아무리 긁어도 긁어지지 않는 가려움이 있다. 이런 가려움은 어떤 연고나 내복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정민, <한시미학산책>)
*** 허리 낮춰 들여다봐 달개비 속에 뭐가 보이나
9.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학교에서 시를 공부하면 할수록 왜 시와 멀어지는 것일까? 시를 왜 어렵고 모호하고 복잡하고 이상한 물건으로 여기게 될까? 혹시 교과서가 시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과서에서는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나는 이 케케묵은 사전적인 정의를 대폭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의 내용을 이룬다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애매하다. 이 말을 ‘사람의 생각과 느낌’으로 순화시켜 읽어도 마찬가지다. 또한 시 아닌 다른 문학 장르에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다루지 않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함축과 운율’이 시의 형식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시는 운율적 결속력이 대단히 미미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율을 따지는 게 난처할 때가 많다. 한 비평가는 시의 함축성보다는 오히려 시가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점을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긴 이야기를 짧게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의 사용”이 시의 특성에 가깝다는 말이다.(이남호,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현대문학)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의견이다.
함축보다는 비유가 중요
과장·감상·현학 배척하고
나 대신 사물이 얘기하게
시를 느끼고 이해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창작자도 시의 사전적인 정의에 갇혀 있으면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인간의 사상을 한 자루의 펜으로 표현하겠다고 대드는 일은 무모할 뿐이다. 한 편의 시가 인간의 사상적 체계에 관여하고 거기에 기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상을 해설하거나 추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시가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감정과 유사한 용어인 감성·정서·느낌을 종이 위에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 붓는 일은 시작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당신이 보고 싶다거나, 풍경이 아름답다거나 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고백’이나 ‘넋두리’ 혹은 ‘하소연’이라고 부른다. 그런 것들이 시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게 세 가지가 있다. 당신은 시를 쓰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것들을 과감하게 배척해야 한다. 첫 번째는 과장이다. 제발 시를 쓸 때만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우습다. 두 번째는 감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그런 것들은 역겹다. 세 번째는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기이한 시어를 주워와 자랑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그런 것들은 느끼하다.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이다.”(오규원, <현대시작법>, 문학과지성사)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해 준다”고 눈에 번쩍 뜨이는 말을 해준 이는 연암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감정을 언어화하는 이 과정을 ‘묘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묘사는 본질에 이르는 관문
대상과 일정한 ‘거리 유지’
하고 싶은 말 참을 줄 알아야
시를 쓰는 사람이 묘사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미술에서 데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묘사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거나 무릎을 구부릴 줄 알아야 한다. 옛 시인들이 산정에 올라 천하를 둘러보며 호연지기를 노래했던 일은 감정의 움직임에 충실한 것이었다. 현대의 시인들은 그걸 따라 흉내 내면 안 된다. 산에 오르기 전에 눈에 띄는 식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귀에 들리는 새소리를 언어의 그림으로 그릴 준비를 해야 한다.
혹시 들길을 걷다가 당신은 달개비 꽃잎 속에 코끼리가 한 마리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황동규, <풍장 58> 중에서) 나도 이 시를 읽고 실제로 달개비를 찾아 꽃잎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달개비 꽃잎 속에는 코끼리가 들어 있었다! (믿어지지 않으면 허리를 낮추고 가만히 달개비 꽃잎 속을 한 번 들여다보라.) 이 구절 때문에, 한 발 늦었다는 자괴감 때문에 나는 요즈음도 꽃잎을 보면 무조건 오래 들여다본다.
어떤 시가 언어예술로서의 기본적인 꼴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도 묘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묘사 능력으로 시의 품격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묘사는 시쓰기의 출발이면서, 또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드러내면 시가 추해진다. 내 마음을 최대한 정성을 들여 그려서 보여주기, 그게 시다.
다음은 조선 후기 한욱(韓旭)이라는 시인이 쓴 한시다. (정양·부사회 공역, <한국 리얼리즘 한시의 이해>, 새문사)
①小築依山似鶴巢 산등에 붙은 오막살이 까치둥지 같다
②荒籬生色鑽春梢 그래도 울타리에는 가지마다 봄꽃이 곱다
③東風似惜吾蘆弊 집이 너무 헐어서 바람도 딱하게 여기나 보다
④?送飛花覆破茅 꽃이파리 휘몰아다가 낡은 지붕을 깁는다
서정시에서 흔히 자아가 대상에 스며드는 것을 ‘동화’ 혹은 ‘감정이입’이라고 하고, 거꾸로 어떤 대상한테 자아를 맡기고 비춰보는 것을 ‘의탁’ ‘투사’ 혹은 ‘투영’이라고 한다. 주체와 객체의 동일시라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 시에서 ①과 ②는 자아가 풍경에 동화되는 순간을 제시한다. 이에 비해 ③과 ④는 자아의 감정을 바람에 의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산등성이 오막살이집의 낡은 지붕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애처롭고 딱한 감정(惜)을 단순히 토로하는 게 아니라 꽃잎이 낡은 지붕을 덮는 객관화된 풍경과 동일시하는 이 기법은 묘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묘사는 무엇보다 구체적 형상화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 삶의 생생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그리는 자는 반드시 완성된 대나무의 모습이 가슴속에 있어야 한다”는 중국의 시론이 있다. 본질을 그리기 위해서는 묘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바꾸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시에서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의 현상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묘사의 생생함이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묘사는 시의 화자인 ‘나’를 객관화하는 데 기여하는 형상화 방식이므로 묘사를 통해 대상과 시적 화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자기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시라는 형식을 빌려 일방적인 고백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옷을 입고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 언어는 또 얼마나 몸이 아플 것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참을 줄 알고, 노래를 시켜도 한 번쯤은 뒤로 뺄 줄 아는 자가 시인일진대, 어두운 노래방에서 혼자만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시인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낯선 생명 속으로 들어가보는 거야
10.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크레파스 덮개를 열어보면 그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는지 못 그리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아이는 하늘을 그릴 때 하늘색만 쓰고, 나뭇가지를 그릴 때 고동색만 쓰고, 나뭇잎을 그릴 때 녹색만 쓰고,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살색’만 쓴다. 그래서 크레파스의 길이가 들쭉날쭉 고르지 않다. 이에 비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는 대체로 크레파스의 키가 가지런하다. 색깔을 어떻게 배합해야 사물의 실제에 가까운 색이 나오는지 아는 것이다.
묘사의 일차적인 목적은 사물이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표현의 사실성은 묘사를 통해 획득된다. 여기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햇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서 나뭇잎은 감청색·청록색·녹색·연두색·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로 나타난다. 색깔을 사실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힘은 역시 관찰에서 나온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단순히 그 음식의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는 것으로 음식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그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곰곰 따져본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모르면 음식점 주인의 옷자락을 잡고 물어본다. 그리고 음식의 재료가 어떤 순서로 조리되었는지 생각해본다. 즉 음식을 나름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 음식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찰한 것을 잘 기억해야만 음식을 원래의 맛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다. 시란 내가 먹어본 맛난 음식, 내가 바라본 멋진 풍경을 언어로 재현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 곰곰 따져봐야
언어의 연필로 그릴 수 있어
이때 기억은 시의 중요한 질료가 된다.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니 삼겹살을 먹게 되거든 제발 고기 좀 뒤집어라.
당신이 들길에서 낯선 들꽃을 만났다고 치자. 우선 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동행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집에 돌아가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한다. 관찰의 목적은 다르지만 시인의 관찰은 과학자의 관찰에 버금가는 것이어야 한다. 당신은 식물도감과 조류도감과 곤충도감 들을 옆에 끼고 살아라. 어떤 생명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고, 그 생명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묘사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냄새는 오로지 묘사를 통해서만 언어로 그릴 수 있다. 장미 꽃잎이 열릴 때 나는 소리, 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 배고플 때 맡는 짜장면 냄새, 감나무에서 우는 매미소리가 내 귓가에 닿기까지의 길, 나비가 날개를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허공의 길을 언어의 연필로 그리는 게 묘사다.
또한 묘사는 개념을 해체한다. 밤은 어둡다, 여름은 덥다, 꽃은 아름답다, 개나리는 노랗다와 같은 문장은 고정관념이 만든 개념적 표현이다. 묘사는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면 ‘시장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많다’고 쓰면 죽은 문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배추, 시금치, 상추가 많다’고 쓰기 시작해야 문장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신석정의 시 <작은 짐승>을 읽으며 묘사가 어떻게 한 편의 시를 열고 닫는지 살펴보자.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이 시의 1연은 시적 화자가 머물러 있는 곳의 위치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좋았다’ ‘푸르렀다’라는 직접적 어법의 두 서술어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행위에 일체의 가식이나 허황한 포즈가 내재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바다와 화자 사이에는 나무들이 서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라고 나무들의 이름을 한 행씩 처리해 배치하였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흔한 나무 이름을 이렇게 행을 나눠 쓴 이유는 무엇일까? 화자가 머무르고 있는 산에 이러한 나무들이 자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나무들은 뒤에 나오는 ‘다문다문’이라는 부사의 도움을 받아 촘촘한 간격으로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독자들은 한 행씩 처리한 이 나무 이름을 보며 나무들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화자의 마음 상태가 현재 지극히 평온하다는 것도 눈치 채게 된다. 묘사의 묘미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비가시적인 것 가시화하고
‘관념’을 구체화해 표현하라
시인이 특별한 장식이나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았는데도 단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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